어제 벌초를 하고 서울로 오는 길은 차가 많이 막혔다. 충북 괴산인가 어딘가에서 오는데 7시간이나 걸렸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추석을 대비하여, 비가 올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모두 벌초를 하러 나왔다. 뙤약볕에서 예초기를 매고 풀을 깎고 갈퀴로 남은 풀들을 긁어내고 치킨을 먹었다. 내가 치킨과 얼음물로 생명을 유지하는 동안 어른들은 막걸리를 마시면서 연락이 되지 않는 친척들을 욕하는데, 이 때 술을 잘 못하시는 우리 아빠도 막걸리를 한두잔 하셨다. 담배를 다시 피우시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집 밖에 나오시니 이렇게 많이 피우시는 지는 몰랐었다.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해 벌초를 다 끝내고 점심식사를 마치니 낮 3시 쯤 되어 차가 더 막히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는데, 운전을 시작하자마자 피곤한 아빠는 졸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빠보고 그냥 주무시라 그러고 내가 한 4시간은 운전을 했다. 막히는 길에서 운전하는 건 뚫린 길보다 더 힘들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엑셀과 브레이크를 계속 바꿔밟아야하기 때문이다. 주차장이 되어버린 도로에서 새벽 6시에 일어나 일을하고 배가 부른 나는 잠이 들지 않기 위해, 아빠의 코고는 소리를 들으며 오디오로 음악을 틀어놓고 따라불렀다. 마침 나가수도 하길래 네비로 틀어서 봤다. 윤민수는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바비킴은 의외로 멋졌다.
내가 어렸을 적에 친척집을 다닐 때면, 아빠는 차가 막히는 오후시간을 피해 항상 늦은 밤에 집으로 출발했었다. 우리 가족들은 새벽에 집에 도착해 아쉬운 잠에서 깨어야 했는데, 나는 예민한 감각으로 집 근처에 오면 차가 느려지는 것을 느껴 잠에서 깨곤 했다. 하지만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자는 척을 해야 아빠가 날 안아서 내 방까지 대려다 주셨기 때문이다. 그게 편하고 좋았다. 그때의 차가운 아빠 품은 따뜻했던 것 같다. 지금의 나는 집에서 키도 제일 크고 몸무게도 제일 많이 나간다. 뒷좌석에 누워서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키가 커버렸고 아빠가 안아서 방까지 올라갈 정도로 가볍지도 않다.
막히는 길에서 졸면서 운전을 해보니, 옆 좌석에서 코를 골며 자는 아빠를 보며 운전을 해보니, 내가 운전석에 앉아서 핸들을 잡고 있다는 사실이 웃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