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밝음의 대립항이기 이전에 전제이다. 빛이있는 곳엔 항상 어둠이 있지만, 어둠만 있는 곳에 빛도 함께 항상 있을 이유가 없다. 눈을 감으면 오직 어둠만이 있지만 눈을 뜨고 수많은 빛들을 보아도 어둠은 항상 함께 감각된다. 낮과 밤의 반복은 어둠이 빛을 덮는 것이 아니라 빛이 어둠을 비추거나 사라지는 것이다. 어둠은 항상 그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
우리는 빛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기에 빛 속에 살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이토록 후련한 일일까. 인간이 정보를 지각하는 데 시각은 90%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 중에도 빛과 어둠을 감각하는 데만 시각의 95%를 쓴다. 나머지 5%로 색을 구분한다는 것. 그런 환경을 접하긴 힘들지만 완벽한 어둠 속에선 우리는 그것을 제외한 3%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곳에선 웬만해선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고 원한다면 나를 완벽히 숨기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그것을 고백하는 것보다 편한 이유일까.
그렇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나도 몰랐던 나의 90% 이상을 노출시키는 일이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살며 그 것들을 나 역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망가지고 더럽혀졌을진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스스로도 충분히 두렵다. 내 머릿 속에, 내 가슴 속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 것의 실체를 보기가 차마 두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짓은 빛을 향하고 있다.
그곳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빛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기에 빛 속에 살다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이토록 후련한 일일까. 인간이 정보를 지각하는 데 시각은 90%이상의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 중에도 빛과 어둠을 감각하는 데만 시각의 95%를 쓴다. 나머지 5%로 색을 구분한다는 것. 그런 환경을 접하긴 힘들지만 완벽한 어둠 속에선 우리는 그것을 제외한 3%만의 감각으로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그곳에선 웬만해선 나를 알아보지도 못할 것이고 원한다면 나를 완벽히 숨기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비밀을 간직하는 것이 그것을 고백하는 것보다 편한 이유일까.
그렇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빛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것은 나도 몰랐던 나의 90% 이상을 노출시키는 일이다. 그동안 어둠 속에서 살며 그 것들을 나 역시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얼마나 망가지고 더럽혀졌을진 나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존재를 드러내는 일은 스스로도 충분히 두렵다. 내 머릿 속에, 내 가슴 속에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을 드러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그 것의 실체를 보기가 차마 두렵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몸짓은 빛을 향하고 있다.
그곳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