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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written

걱정

by AKHWEE 2013. 1. 20.

나를 미대생이라고 소개하면 거의 항상 듣는 두가지 정도의 말이 있다. 바로 "어떻게 먹고 살려고?"와 "그림(종종 초상화로 바꿔 말해도 된다) 잘 그리겠다!" 이 두가지 이다. 약간의 비아냥이기도하고 기대감이기도한 성질이 다른 두개의 질문을 거의 동시에 듣는 것도 재미가 있지만,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거의 항상 드는 두가지 정도의 생각이 있다. 바로 "어떻게 먹고 살까?"와 "그림 못그리는데;;" 이 두가지 이다. 사실 누가 뭐라안해도 평소에도 땅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퀴벌레처럼 예고없이 그런 걱정들이 불쑥 떠오른다. 그럴 때면 그림을 잘그려서 먹고 사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보다 두 배 정도는 더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은 예쁜데 착하기까지 한 누구처럼 동시에 갖기 힘든 것을 지닌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통섭'이니 '융합'이니 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시대에 살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림(초상화)를 그린다는 것은, 그리고 사람들이 그것을 기대한다는 것을 보면, 잘 찍은 사진보단 훨씬 가치있는 일인가보다.

 초상화의 얘기를 해보자. 초상화를 그려본 사람은 안다. 약간의 오차가 그 사람의 인상 전체를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을.(그런 면에서 성형외과 의사들은 대단히 대단하다. 그들은 그 사람의 인상뿐만 아니라 인생 전체를 바꿀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보기와 달리, 사실 더 열심히 보면, 혹은 직접 그려본다면, 초상화는 때론 그 대상의 보이는 것 이상을 담고 있다는 사실과 만난다. 이마의 주름이나 코의 휘어짐, 입술의 색, 눈동자의 깊이 등등 모든 사람은 저마다 다르게 생겼고, 심지어 같은 사람이라도 방금 전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차이를 감지해내고 나아가 표현해낼 수 있는 예민한 감수성이 중요해지는데, 다시 말해, 모델의 포스보단 작가의 능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초상화들을 볼 때 사람들은 누구를 그렸느냐보다 누가 그렸느냐에 더 깊은 관심을 보이는데 왜 그러는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화가와 의사는 다르다. 사람들은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어떤 병원에서 받은 것인지보단 그게 예쁜지 아닌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화가에겐 원판보단 그 그림을 그린다는 제스쳐와 아이디어만이 그 화면 위에 남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초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소재와 상관없이 모든 작품 그 자체의 무엇들과 굉장히 긴밀한 문제이다. 작가가 같다면 사실 그것이 콜라병이든 마릴린먼로이든 그것들 간의 차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방금 나의 고민 하나가 더 생겼다사라졌다. 지도관님이 초상화를 부탁하시고선 무언가를 기대하는 표정으로  이면지와 연필을 가지러 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방서 차고 창고 한쪽을 보면 이젤 몇개가 포개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