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교통사고 현장에 다녀왔다. 무전 내용으론 정면 충돌이라고 들었었는데 현장에 도착해보니 어떻게 된 일인지, 트럭과 승용차가 나란하게 인도를 향해 올라가 있었고 같은 방향을 보고 있었다. 둘 다 앞이 찌그러지고 에어백이 터져 있었으며 바닥엔 유리조각이 흥건(?)하게 쏟아져 있었다. 환자는 왜 사고가 났는지 기억을 못하고 있었고 했던 말을 계속 했다. 뇌진탕인가보다. 환자를 구급차에 옮기고 챙길만한 귀중품이 있나 차 안을 살펴보았다. 가장먼저 보인 것은 바닥에 약봉지들이었고, 약봉지 뒤로는 정신없이 쏟아져있는 서류들, 명함이라던지 영수증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캐비넷 안에는 통장들도 있었고 동전 통 안에는 동전도 있었고 핸드폰도 있었다. 이 차의 주인의 입장에서 무엇이 귀중품일지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어디까지가 귀중품이고 어디까지는 그것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차가 너무 심하게 찌그러져 있어서 아마도 폐차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아마 그 차가 없이는 차의 주인들의 생활도 찌그러질 것 같아서 아찔했다. 트럭없는 트럭기사를 상상해보라.
나는 15년 전 6월 1일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야말로 진정한 정면 충돌이었다. 앞좌석에 앉아있던 나와 동생은 앞유리에 이마를 부딪혔고 아직도 그 때의 흉터가 남아 있다. 특히 내 이마와 눈썹엔 더 심하게 남아 있다. 15년 전만하더라도 모든 차에 에어백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보다하는 생각이 교통사고 현장에 나갈 때마다 에어백이 터져있던 차들의 모습과 함께 떠올랐다. 동생은 금방 퇴원했지만 나는 꽤 오래 병원에 남아 있었다. 98년도 월드컵을 병원에서 보았다. 결승전의 경기는 직접보진 못했지만 퇴원한 후라서 집에서 아침에 라디오를 통해 결과를 전해 들었다. 그땐 수퍼스타가 많이 있었다. 호나우도와 수케르와 바티스투타 등 지금은 보기 힘든 전설적인 선수들이 다 있었다. 얼마전 A매치 경기에서 수케르의 모습을 오랜만에 다시 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수케르만큼 컸는데, 수케르는 이제 머리도 단정하고 정장을 입는 사람이 되었다. 어쨌든 사고 후 한동안은 이마에 스카케어라는 실리콘같은 것을 붙히고 다녔었고, 그 밑에다간 자동차에 대한 트라우마도 함께 붙히고 다녔었다.
시간이 흘러 무단횡단을 다시 할 수 있었던 때는, 안전밸트를 매는 것이 귀찮아질 때 쯤과 거의 정확히 일치했다. 요즘도 친구들이 운전하는 차를 타면 밸트를 무조건 매는데 아빠차를 탔을 땐 예나 지금이나 밸트를 매지 않아도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우리 가족들은 밸트를 매고, 엄마는 긴장을 해서 잠도 못주무신다. 난 운전을 잘하는데 말이다.
어렸을 때 라면을 끓이다가 냄비를 태우거나 계란 후라이를 하다가 손가락을 디인 적이 있어도, 우리는 라면을 끓이거나 계란을 깨서 팬위에 올린다. 요 며칠 사이 교통사고 환자들을 많이 만난다. 내 흉터보다 깊거나 얕은 상처가 생기고 그 위에 상처보다 얕거나 깊은 흉터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죽거나 하지 않는 이상 다시 자동차를 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