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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s/from czezh, turkey

2010.12.22(수)

by AKHWEE 2011. 2. 24.







처음으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에어로플로트라는 러시아 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인천에서 모스크바까지, 모스크바에서 프라하까지의 비행이었습니다. 
인천에서 이륙을 한 순간부터 계속 어느 아이가 울었습니다. 모스크바까지 약 8시간이 소요되는데다가 타이어의 문제로 2시간 정도 이륙이 지연되었기 때문에 짜증이 날 법도 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도 통제력을 잃고 당황해하실 정도였으니 주변사람들은 어땠을까요.

첫 해외 여행이기 전에 저에겐 첫 여행이었습니다. 여권발급부터 시작해서 이 여행과 관련된 모든 것이 처음이었죠. 물론 기내식도 처음이었습니다. 러시아 항공사의 서비스라 그런지 메인으로는 치킨/소고기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고 버터와 빵, 샐러드도 함께 나왔습니다. 맛있었습니다. 비행이 익숙한 사람에겐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에겐 좋은 식사였고 사실 양이 좀 부족했습니다. 

타이어 문제로 이륙이 지연됬다고 했었는데, 이 문제는 모스크바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비행기를 환승해야 할 여유시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유학중인 슬로바키아인들과 함께 러시아 공항을 뛰어다녔습니다. 긴장도 했고 뛰기도했고 땀이 났습니다. 다행히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에 탈 수 있었습니다.

프라하로 향하는 도중 이상기류를 만나 기체가 심하게 흔들렸었습니다.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던 순간에 비행기가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10시간을 소요하는 인천-모스크바의 비행기보다 단 3시간을 소요하는 모스크바-프라하의 비행기의 시설이 더 최신식이고 의자 간의 공간도 넓습니다. 아마 러시아항공사는 후자의 비행기가 더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서서히 한국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범종의 안에선 그 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진정한 범종의 소리를 듣기 위해 우린 범종의 밖으로 나올 필요가 있습니다.

프라하에 도착했습니다만, 인천에서 프라하로 온 우리일행과 슬로바키아인들의 수하물은 아직 도착을 안했다고 합니다. 분실물센터에 숙소의 주소를 적어주고 가벼운 손으로 프라하 공항을 나왔습니다. 

안개가 심하게 낀 프라하에서 오랜만에 깊게 쌓인 눈을 만났습니다. 어릴 적 시골에 가면 키만큼 쌓여있던 눈을 볼 때의 그 느낌이었습니다. 시티은행에서 만든 국제현금카드로 체코돈(코른)을 인출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여러 군데의 환전소를 전전하며 동전을 만들었습니다. 버스를타고 시내로 이동하는데 버스 안에선 땀냄새가 심하게 났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트램으로 갈아타고 날이 한참 깜깜해져서야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 밖에 주인장 형님이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수하물의 문제로 약속시간보다 많이 늦었습니다만, 추운 날씨에도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습니다. 그렇게 프라하에서의 첫째날이 저물었습니다.



흔히들 여행을(삶을) '만남'과 '헤어짐'으로 비유해 이해합니다. 
그 대립하는 두 요소들간의 긴밀함을 관찰해보면 우리는 많은 의미를 뽑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만남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 그 만남은 헤어짐을 향해 가고, 헤어짐이 이루어지는 순간 새로운 만남이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헤어짐의 무게 때문에 우리는 아쉽게도 새로운 만남의 기쁨을 잊고지내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신영복 선생은 여행을 떠나옴-만남-헤어짐-돌아옴 으로 해석하셨던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우리가 여행 중에 있기 때문에, 헤어짐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역으로 만남의 시간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돌아옴의 기약이 없는 여행은 반대합니다. 여행의 완성은 돌아옴에 있고, 여행의 목적도 돌아옴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일생동안 옆에 두고 함께 했던 사랑하는 것들과 하루만큼 멀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만날 날이 하루만큼 가까워졌다는 사실은 저의 여행을 더욱 가치있게 만듭니다.
윤동주 선생의 <눈오는 지도>의 시가 떠오릅니다.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화자는 처음엔 눈을 원망하지만, 눈이 녹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핀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눈이 내리길 기쁘게 소망합니다. 다시 만날 그날을 기다리며 나는 사랑하는 것들과 기쁜 맘으로 하루만큼의 이별을 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