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alks/from czezh, turkey

2010.12.23(목)

by AKHWEE 2011. 2. 26.





































아침에 일어나 처음으로 외출을 했습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로레타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때마침 정각을 알리는 타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노래가 연주되는데 그 종소리는 사방이 눈뿐인 프라하의 아침에 따뜻함을 선사했습니다. 그 교회의 겉모습과 내부는 바깥 마을 풍경과는 대비적으로 상당히 화려했습니다. 이 교회가 세워질 당시 한국(조선)에서도 부자나 양반들이 사찰 건설에 많은 투자를 했었죠. 종교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도 하지만, 때론 부정한 사람들이 죄를 씻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로티에 의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구원'을 받기 위해 종교라던지 철학이라던지 예술을 탐닉한다고 합니다. 재벌이나 기업가들이 예술품을 구매함으로써 정화나 세례를 받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그런 취미는 계층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만, 돈밖에 몰랐던(모르는) 자신의 삶을 예술품의 아우라로 포장하는 것이지요.

로레타교회에서 멀지않은 곳엔 스트라호프 수도원이 있습니다. 지난 학기에 도서관정보검색이란 수업을 들었었는데 그 수업에서 세계의 도서관으로 소개되었던 '철학의 방'과 '신학의 방'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문자 등의 기록매체의 등장으로 인간은 '과거'의 지적 재산들에게 '현재'의 옷을 입힐 수 있는 능력을 얻게됩니다. 비록 철학의 방과 신학의 방은 오늘날엔 이용되지 않고 관광객을 위한 유물이 되어버렸지만, 그곳에는 박제된 과거로서의 유물이 아닌 현재를 지탱하는 문화의 뿌리가 내려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 이미 상상을 통해 담을 넘어 철학의 방 가운데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사다리를 타고 높이 있는 책 한권을 꺼내어 먼지를 털고 조용히 펼쳐보았습니다. 곰팡이 냄새가 멋있게 피어났습니다.

수도원에서 나와 프라하성을 지나 내리막길을 좀 걸어가다보면 까를교가 나옵니다. 까를교를 건너면 사람들이 프라하라고 말하는 관광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만, 아직 관광지의 옷을 덜 입은, 떼가 덜 탄 평화로운 까를교를 건너기 전의 마을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완 상관없이 이들은 행인들의 동선을 고려하여 화분을 놓거나 담벼락에 페인트칠을 합니다. 서울은 왜 온통 회색 뿐일까요. 아직은 일상 속에 예술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된 것일까요? 

까를교를 올라가면 블루스를 연주하는 젊은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방송에 자주 등장했다는 할아버지 밴드의 재즈공연도 한편에선 펼쳐지고 있습니다. 몇몇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팔거나 그림을 그려주고 그걸 팝니다. 

까를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관광지가 시작됩니다. 온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프라하에서는 건물 하나하나가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때문에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써야만 했고(써야만 하기 이전에 이들은 이미 오래된 것들의 가치를 공감하고 있었던 것같습니다) 오래된 건물들에서 첨단의 패션이나 유행들을 판매하는 모습은 과거가 단지 과거로 남지 않고 현재로의 연장선으로 존재하고있다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거리거리에는 연말이나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조명을 꾸며놓았습니다. 광장에선 전통음식들을 길거리음식으로 간단하게 만들어 팔고 있었습니다. 도너츠에 설탕을 많이 뿌린 것인데 맛은 있었지만 양에 비해 가격이 비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TESCO라는 수퍼마켓으로가서 장을 보고 그것으로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태어나 처음으로 유료화장실을 마주했습니다. 이전까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에게 말로만 들어왔던 것이었습니다. 돈을 주고 볼일을 본다는 것은 왠지 익숙하지않고 나아가 손해보는 느낌이 들어서 식당을 가거나 무료화장실을 만나면 억지로라도 일을 봐야지 하는 다짐을 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사람들은) 밥은 기꺼이 돈내고 먹으면서, 왜 싸는데 돈쓰는 것은 아까워하는 것일까요?

무작정 걷다가 긴 벽을 만났습니다. 벽에는 창문이 있었죠. 알고보니 건물이었습니다. 그 정체가 궁금해서 문을 찾아 들어가보았습니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과학학교 학생들을 위한 도서관 건물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과거에는 연방 은행으로 쓰였던 유서깊은 건물이기도 했었다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런 빈티지하고 고급스런 건물은 호텔로 바꿔서 쓰는 것이 일반적일 것입니다.(이스탄불의 많은 왕궁들은 호텔로 쓰이고 있습니다) 호텔로 개조했었다면 제법 짭잘했을 것을 도서관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로웠습니다. 행인들의 동선을 고려해 담벼락을 색칠하는 이들을 이해하기엔 저는 너무나도 한국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도서관에서 나와 조금 걸어가봤더니 까를교보다 한블록 아래 있는 교각이 나왔습니다. 여기에는 새로운 조형물을 새우는 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그 조형물을 위해 공무원들이 얼마나 많은 비용(시간과 열정)을 들였을지 상상해봤습니다. 프라하는 새로운 것을 또 추가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안고 있는 도시입니다. 새롭고 '예쁜' 것들이 오히려 도시의 맥락을 파괴하는 시각적 공해가 될 위험이 매우 클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요?

또 계속 걷다가 또다른 도서관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이곳은 시립도서관이었습니다. 화장실이 무료였지요. 도서관의 입구에는 책으로 만들어진 재밌는 조형물이 있었습니다. 공간에 잘 어울리는 설치미술이었습니다. 

사람들이 프라하를 이야기할 때엔 반드시 야경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프라하는 야경이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머무는 동안은 안개가 심해 그것을 잘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새벽이나 낮에 봤던 파스텔톤의 담벼락들이 더 아름다웠던 것같습니다. 밤이 되면 그 색들은 모두 어둠에 묻히고 맙니다. 여담이지만 프라하의 밤이, 가로등이 어두운 것은 그만큼 치안이 좋기 때문이라고 숙소 주인형이 말씀해주셨습니다. 굳이 밝게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가로등은 얼마나밝습니까? 밝아봤자 소용이 없는 것과 굳이 밝을 필요가 없다는 것 사이에는 무엇이 진정으로 당당한 것인지에 대한 프라하의 대답이 있습니다. 물론 한국의 치안도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후일담..
-프라하성에 가보려 했었으나 정오에 있는 근위병 교대식 이후 몰린 관광객들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었고, 돈조반니의 마리오네트공연도 피곤한 관계로 다음으로 미루었습니다. 프라하는 모짜르트가 돈조반니의 초연을 한 도시입니다. (하지만 계속 미루다가 결국 마리오네트는 포기합니다.)
-폴란드의 일정은 포기하고 체코의 일정을 늘이기로 했습니다. 숙소 주인장누나의 도움으로 그 후 프랑크프루트에 들려 터키로 갈 계획을 짰습니다. 사실 크라코프의 강추위에 대비해 단단히 준비를 해왔는데 그 장비(?)들을 쓰지못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쉽진 않았습니다. 그만큼 프라하는 첫인상만으로도 큰 기대를 주었던 도시였고, 돌아온 후에도 프라하의 일정을 늘이면서까지 폴란드에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솔직히 소금광산과 아우슈비츠에 가보지 못한 것은 조금 아쉬웠습니다.)
-관광객인 티를 내느라 배낭을 매고 하루종일 돌아다녔었는데, 어깨가 아파서 당장 배낭을 매고다니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았고, 결코 쉽진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시차적응이 덜 된 듯한게 밖에 있을 땐 몰랐는데 돌아와보니 너무 피곤했습니다. 
-날씨가 춥지않아 돌아다니는데 지장이 없어 다행인 것같습니다. 안개도 멋졌습니다만 하루쯤은 맑은 날이 있었으면 합니다. 전망대에 올라가보고 싶기 때문입니다(결국 전망대는 포기합니다)
-도시 곳곳에서 그래피티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래피티를 지우려고 별로 노력을 안하는 것같습니다. 낙서는 하위문화를 향유하는 집단들이 주류문화를 향유하는 집단과 소통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장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낙서가 행해지는 장소의 공간성은 매우 개방적이어서 그 파급력이 클 것입니다. 또한 익명성도 주목해볼만 합니다. 낙서는, 나아가 시각매체를 다루는 예술행위들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솔직해질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여러 가게들이 앞마당을 공유합니다. 닫힌 공간안에서의 열린 공간을 만들어 내는 이들의 건축양식은 사람과 관계를 지향하는 상상력의 산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