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형이 형이랑 져지보이(jersey boys)라는 뮤지컬을 보았습니다. 그 유명한 브로드웨이에서 직접 본 브로드웨이 뮤지컬입니다. 대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어서 말장난같은 개그에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대략적인 내용을 이해할 수는 있었는데, 아마도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뛰어난 연기력과 무대연출, 그리고 가창력 때문이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가 앉은 자리는 2층 때문에 무대가 완전히 보이진 않았지만, 확실히 배우나 스탭들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그들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어떻게 그것을 활용하는지는 절절히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관객을 즐겁게 만드는 방법을 아는 진짜 연예인들이었습니다.
뮤지컬을 본 후 코리아타운에 있는 신라라는 한식당에가서 갈비를 먹었습니다. 태형이 형은 브루클린에서 유통업에 종사하는 형입니다. 그 형의 뉴욕 경험담을 들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형이 브루클린에 머물면서 봤던 광경이었는데, 흑인들이 소화전의 윗뚜껑을 렌치로 열어서(소화전을 사용할 때는 옆에 있는 뚜껑을 엽니다) 분수처럼 물이 나오게 한다음, 블락파티(block party)를 했다고 했던 것입니다. 소화전이 망가지자 동네의 사람들은 오디오나 접이식 의자를 들고 나와서 소화전(분수)주변에 둘러앉아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아무도 경찰을 부르지 않고 그 상황을 즐겼었다고 합니다.
태형이 형은 나랑 비슷한 세대이지만 조금 더 나이가 많아서 내가 어렸을 때 경험했던 것들을 더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박찬호, 차범근, 이영표, 이천수, 도쿄대첩, 최용수 등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운동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그 때 참 즐거웠었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요즘에는 제레미 린이라는 NBA선수가 아주 유명합니다. 이 선수 덕분에 뉴욕팀의 경기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팀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버스터미널이나 기념품 가게에서는 제레미 린의 져지를 많이 팝니다.
운동선수의 선수생명은 매우 짧습니다. 아무리 길어봐야 20년을 체우기 힘이 듭니다. 하지만 그들은 은퇴 후에도 오래도록 기억되며, 나와 태형이 형의 대화에서 처럼 그 시대를 기억하는 것에 영향을 주거나, 후배 선수들에게도 계속 영향력을 미칩니다.
뉴욕에는 브루클린과 브롱스에 야구스타디움이 있습니다. 브롱스는 할렘보다 더 윗동네이고 더 가난한 동네라고 합니다. 하지만 법원건물이 있어서 잠재된 범죄들이 억제되어 있는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그곳에서 경기가 있는 날이면 훌리건들이 난동을 피운다 해도 뭔가 절제되어 있고, 사람들이 싸운다 해도 뭔가 덜 열심히 싸우는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할렘보다 더 위험하지만 절제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신비한 동네라고 합니다.
여행객들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위험한' 동네가 있습니다. 치안력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런 위험한 동네일수록 미국인보단 이민자들이 사업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특히 인도인, 한국인 그리고 히스페닉이 대부분이라고 합니다. 물론 중국인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 민족들이 섞여있는 미국은 그 민족 저마다가 차지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일찍이 신영복 선생은 미국은 인종의 융합로가 아니라, 인종의 모자이크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는데 그런 모습이 여기서도 발견됩니다. 뉴욕에 돌아다니는 자전거 택시들은 터키인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각종 길거리 음식을 파는 노점들은 히스페닉이나 아랍인들이 점령하고 있습니다. 세탁소나 호텔 등의 사업은 유태인이 했었는데, 그 중 세탁소 사업은 한국인이 빼았았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 세탁소는 24시간 영업을 하는데 유태인은 그것을 해내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려났다고 합니다. 델리라고 불리는 수퍼마켓이나 네일샾들도 한국인들이 운영을 많이 합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그런 사업을 하고, 금융업 등의 전문직의 경우엔 더 많은 보수를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플러싱이라는 곳에선 성매매도 한다고 합니다. 참 다양한 스팩트럼의 정체성을 가지고서 이곳에 정착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한국인은 치열하게 사는 편이라고 합니다. 만약 세탁소에 취직한다면 그들은 5년 후 세탁소를 차릴 목적으로 일을 한다고 합니다. 다른 외국인들은 5년 후에도 내가 이 직장에 남아 있다면 감사하다는 식의 태도로 일을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는 아메리칸 드림을 안고 이곳으로 넘어온 초창기 이민자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 정착해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한국계 미국인이나 교포2세, 3세 등의 생활은 네이티브 미국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많은 한국출신 젊은이들에겐 수학잘한다는둥 부지런하다는 둥의 이런 얘기들은 옛날 얘기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