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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written

도로-중립국

by AKHWEE 2014. 7. 12.

최인훈의 소설 <광장>속 명대사인 "중립국"이란 말이 떠오르는...아스팔트 위라는 장소의 정치성에 대한 메모.


아스팔트 위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물리적 공간이다. 벤틀리든 쏘렌토든, 카레이서든 김여사든, 이건희든 리어카에 폐지를 줍는 노인이든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같이 아스팔트 위라는 공간을 공유한다. 심지어 이건희랑 우리는 마시는 공기조차 다르니 이 얼마나 귀하고 재미있는 장소인가.


(아직까진) 부자 전용 도로나 거지 전용 도로가 없는 까닭에 김여사는 가만히 있는 벤틀리에 갖다 박을 수 있었다. 이건희의 마이바흐를 리어카로 직접 박을 수 있는 곳 역시 전국 곳곳을 연결하고 잇는 아스팔트 위가 유일할 것. 가끔 귀빈들이 나타나면 도로를 통제하긴 하지만 그건 매우 특수한 경우이다. 그런 행사가 끝나는 즉시 벤틀리든 김여사든 가리지 않고 사람들은 도로로 쏟아져 들어온다. 도로는 본래의 모습인 누구나의 것으로 돌아 오는 것이다. 앤디워홀이 대통령이나 부랑자가 마시는 콜라는 모두 같은 콜라라고 얘기했던 것과도 통하는 부분이 있는듯.

그러나 그것은 잠깐이다. 전문 운전수가 아닌 나머지의 사람들은 도로 위에서 잠시 만나고, 그 공간을 향유하고 함께 점유한 후 각자에게 어울리는 각자의 장소로 흩어질 뿐이니까. 지난 4월에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터미널에 모였던 일을 상기시키려는 것, 딱히 이 도로를 정치 투쟁의 장소로 사용하자는 얘기는 뿐만 아니라. 오히려 모두 같은 콜라를 마시며 미국 사회가 대동단결 되었고, 먹고사니즘 안에서 한국 사회가 대동단결한 것처럼 도로 또한 전국적인 화합과 융합의 장이 될 여지도 있는 중립국이다. 대신 여기서의 중립의 의미는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은게 아니라, 이것도 될 수 있고 저것도 될 수 있는 좀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중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