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실로 방을 옮겨 지내다보니 이젠 아래층 도미토리에선 누가오고 누가 가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식사를 위해 테라스에 올라가면 부지런한 파키스탄 친구들이 인사를 합니다.
트램을 타고 돌마바흐체 궁전에 갔습니다. 토프카피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세련된 아주 우아한 유럽식 건물이었습니다. 입구에선 근위병이 동상처럼 서있었습니다. 이 궁전은 보프러스 해협을 끼고 위치해 있습니다. 바다 쪽에 서면 바다를 사이로 유럽과 아시아 대륙이 마주하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서 그곳을 바라봤을 왕은 어떤 생각을 했을지 궁금합니다.
이 궁전 안에는 새병원이 있습니다. 닭이랑 공작이 돌아다니길래 그들을 따라가봤더니 새장이 나왔고 설명을 보니 병원이었다고 합니다. 닭의 생김세는 지역마다 다른 것 같습니다. 셀추크에서의 닭들은 목과 다리가 길었지만 여기에 있는 닭들은 한국의 닭들보다 더 짧아 마치 공같았습니다. 상추를 잘 먹길래 나도 상추를 한번 줘봤습니다. 잎을 먹고 줄기만 남자 쳐다보지도않고 다른 상추를 찾아 갑니다. 동물들도 인간처럼 쓴건 뱉고 단건 삼킵니다. 사실 인간도 결국엔 동물입니다.
왕궁 건물은 투어를 꾸려서만 관람이 가능합니다. 내부의 화려함은 외부의 화려함을 압도하고도 남습니다. 모든 손길이 닿는 곳마다 화려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내가 밟고 서있던 양탄자조차 그러했습니다. 육중한 샹들리에는 스스로 빛을 낼 정도로 화려했고, 식기나 벽의 회화도 반짝거렸습니다. 화려한 삶이 내 목표도 아니고 그다지 동경하는 편도 아니지만 이 궁에서의 생활은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풍요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100년 전 이곳은 풍요로움보다 소중한, 중요한 것들에 대한 문제로 생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터키의 새로운 역사를 열었던 그들의 삶은 오늘날의 터키인들에겐 그 보석보다 빛이 날 것입니다.
창을 통해 바다와 하늘과 빛이 들어옵니다. 내 눈동자를 전율시킵니다. 투어의 마지막으로 갔던 홀에는 높이가 아주 높은 샹들리에와 그것을 지탱하는 여러 기둥이 있었습니다. 나도 작업실을 갖게 된다면 높이르 최대한 높게 짓고 문도 최대한 크게 만들고 싶습니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는 계층적 모순을 극복한 위험한 사랑과 그것의 결말(물론 그러한 사랑이 언제나 비극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을 보여줍니다. 구명보트에 있다가 다시 침몰하는 배로 뛰어 돌아온 여주인공에게 남주인공은 왜 돌아왔냐며 나무랍니다. 그 대사에는 기쁨과 슬픔과 웃음, 눈물 등 인간의 모든 감정이 들어 있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내가 아는 연기를 가장 잘하는 배우 중 하나입니다. 갑자기 타이타닉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궁전의 계단이 영화 <타이타닉>의 촬영지로 쓰였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오랜만에 마트에서 요거트를 사서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그 추운 프라하에서는 오히려 자주 그랬는데 더 따뜻한 여기선 그런 적이 처음입니다. 공원에서 요거트를 먹었는데 어느 터키인이 와서 식사를 하는 우리한테 자꾸 터키어를 가르쳐주고 다 먹었더니 함께 걷자고 했습니다. 걷는데 갑자기 팔짱을 끼길래 원래 터키남자들이 애정표현을 잘한다는 말이 떠올라 그냥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과도한 스킨쉽을 하려해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그러한 나의 행동이 그에겐 큰 상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 조차도 여자한테 차이고 상처받는 것에 익숙합니다만, 그는 나보다 더 심할 것입니다. 그러한 힘든 삶을 살아가는 그를 나는 이해하지만 공감하지는 못한 체, 다만 그를 격려할 뿐입니다.
갈라타 타워를 가는 길엔 악가상가들이 쭉 줄을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낙원상가처럼 말입니다. 터키의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음악과 공연영상을 거의 도배하다싶이 올립니다. 많은 터키의 젊은 이들이 그들의 표현 수단으로서 음악을 선택하는 것 같습니다. 왜 미술행위는 상대적으로 천대를 받을까요? 우리가 농담으로 하는 말 중에 '그것은 평생 풀어야 할 숙제'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녁을 먹고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걷는게 습관이 되면 좋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문명의 이기는 달콤합니다. 얼마나 편리한 트램인지는 다리가 아플수록 강하게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위태롭게 쌓아올린 바벨탑 위에서 침을 흘리고 있습니다. 높은 곳일수록 추락에 대한 공포는 커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카루스의 날개로 날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walks/from czezh, turk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