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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s/from czezh, turkey

2011.02.03(목)

by AKHWEE 2011. 3. 17.












목요일은 이스탄불 현대미술관이 무료입니다. 몸상태가 썩 호전되진 않았지만 귀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고 날씨도 좋아서 외출을 과감히 감행했습니다. 미술관의 규모는 거의 부산에서 비엔날레를 했던 전시장과 비슷했고, 나란히 있는 같은 모양의 건물에선 '인체의 신비'가 전시중이었습니다. 중학생때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이곳에서 그것을 다시 보니 반가웠습니다.
미술관은 겉으로 보기에도 규모가 컸고 그 안의 내용물들도 알차게 꾸려져 있었습니다. 어쩌면 터키에 온 이래로 계속 풍경이나 일상적인 시각 환경에만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런 미술품들이 반가워서 그렇게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쌀밥만 먹다가 치킨과 콜라를 마시는 기분이었습니다. 2층으로 통하는 출입구를 들어가면 시작부터 스케일이 큰 브루스나우먼의 작업과 닮은 네온사인 작업이 걸려 있습니다. 동선을 유도하는데로 따라가면 터키의 현대 회화가 어떤 식으로 진행됫는지 그 흐름을 대강 훑어볼 수 있습니다. 유화의 시도와 큐비즘이 주류를 이루는 데 색이 탁하고 화지의 크기가 큰 것이 특징입니다. 모던 회화도 추상이나 리얼리즘의 계보를 따르는게 동시대 미술을 추구한 당시의 한국의 미술과 닮아 있었습니다. 잠시 프라하의 이야기를 하자면 아직도 프라하는 추상표현주의나 초현실주의 같은 우리가 생각하는 '과거'의 미술을 아직도 연구하는 작가가 많이 있습니다. 제대로된 연구가 없이 그저 시류만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우려했던 김춘수 교수님의 말이 떠오릅니다. 터키를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형식이나 내용에서 딱히 터키만의 감수성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인상을 주는 인상이 좋은 작품이 많이 있었습니다. 입구와 연결된 2층은 상설전시를 하는 곳이었고 1층은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2개의 기획전이 있었는데 하나는 비디오 아트를 하는 Kutlug Ataman의 <The Enemy Inside Me>라는 비디오 전시였고 또 하나는 Yao라는 중국 사진작가의 사진전이었습니다. 아타만의 비디오는 그 개념을 쫒아가긴 힘들었지만 전시의 분위기는 좋았습니다. 비디오아트를 보며 미적인 쾌를 느끼는데엔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건강하려면 골고루 먹어야 합니다. Yao의 사진은 유치했습니다. 
디지털 매체의 발달은 원본을 복제해 이미지를 만드는 예술행위에게 있어 파격일 것입니다. 원본과 이미지 간의 차이가 없어지기도하고, 나아가 이미지가 원본을 대체해버리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상상력의 산물인 이미지는 또다시 우리의 상상력을 규정합니다. 우리의 상상력은 팔레트 위에 물감과 같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없고 새로운 조합만이 있을 뿐입니다만, 원본이 없는 이미지는 우리가 그 팔레트를 보지 못하고 섞인 물감만을 보게 만들어 우리의 상상력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이미지를 창조하는 사람으로서 나의 상상력은 새로운 새로움을 햔한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미술관에서 나와 한참을 걸어 군사박물관에 갔습니다. 오스만제국의 군악대는 기록상 세계 최초의 군악대라고 합니다. 이들의 군악대 공연을 보기 위해 늦기전에 가려고 땀이 나도록 걸어 갔었는데 공연은 매우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몇 곡을 듣고 나와서 사람이 없는 틈을 타 진열되어 있는 전쟁 도구들을 관람했습니다. 수많은 무기들이 시대순으로 혹은 지역별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효과적으로 죽이기 위해 지식과 힘을 썼습니다. 칼과 도끼날에 세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빛을 받아 예쁘게 빛나지만 서늘했습니다. 전쟁이 살아남은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미 세상에 없는 전쟁의 희생자들은 그 향상된 삶을 누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앞으로의 전쟁은 더이상 인간의 삶을 향상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전 세계인들이 그 희생자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왓치맨>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과연 진실은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수퍼히어로들은 왜 수퍼히어로의 일을 해야 하는가, 신은 왜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는 영화였습니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 그래야만 한다는 답을 할 이유는 없습니다. 다만 그래주길 바랄 뿐입니다. 전쟁이 없는 진정한 평화를 누리고 싶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커다란 욕심에 불과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은 현실의 방향을 제시해줍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오늘날의 인류는 꿈과 이상을 바라봐야 할 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반쪽짜리 평화는 반쪽짜리 폭력의 또 다른 이름일 것입니다. 전쟁과 폭력이 종말을 맞이한다면 그 떄부터의 인류 역사는 완전히 새롭게 쓰일 것입니다. 더이상 그들은 오늘날의 인류가 아닐 것이며 진화된 신인류로서 역사를 움직여갈 것입니다.
길에서 어느 터키 여학생이 말을 걸었습니다. 그녀는 한국말로 인사를 건냈습니다. 교환학생을 준비중이고 9월에 시립대로 올지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한국 연예계에 관심이 많았고 그것이 한국을 선택하는 데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요즘 아이돌 가수들이 범람하면서 여기저기선 불만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이돌 문화도 부정할 수 없는 팝음악의 한 부분이며 그 부분에서 우리나라의 아이돌 그룹들은 상당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한 터키 여학생의 인생을 바꿀 정도이니 말입니다. 그 여학생과 함께 저녁을 먹고 토요일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그녀는 아직 학교에 다니는 중이라 내일 마지막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합니다. 그 시험을 치르고 당분간 쉴 것인데 그동안 우리를 가이드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신기하고 좋은 인연을 만났습니다. 행운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