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친한 친구의 동생이 갑작스런 사고로 세상을 뜬 일이 있었다. 그땐 어떤 말을 해야 할 지도 몰랐고, 사실 어떤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었다. 친구와 그의 부모님들을 공감하고 위로해보려 내 동생이 사고를 당하는 상상도 해보려 했지만, 이기적이 나로선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어쨌든 (혹은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그 무거운 공기가 갑갑했는지 주변에서 친구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당시로부터 지금까지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장난을 떠올리며 세어나오는 웃음을 피식피식 배출하느라 애를 먹었다. 이기적이게도. 이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후로는 웃으면 실례가 된다는 강박감에 미안하게도 계단을 내려가자마자 괜히 웃음이 나왓었다.도망치듯 밖으로 나와 미술학원으로 갔다. 마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집에 먼저 들어가 시험공부를 했던 것과 같다.
나는 누가 내 곁을 떠나야 그때서야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 언제나 내가 눈물을 흘릴 때는 나를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자주 눈물을 보인다는 것은 내게 한편으론 부끄러운 일이기도 하다. 친구와 그의 가족들이 느꼈을 당시의 슬픔을, 그 감당할 수 없을 무게를 나눠주지 못해 미안하다. 굳이 핑계를 들자면, 그 슬픔을 품어주기엔 난 이미 너무나 많은 핑계를 껴안고 있었고 그 핑계들을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미안하다.
며칠 전 학교 동생의 아버님이 큰 사고로 돌아가셨다. 곁에 계셨던 어머님은 심각한 중상을 입으셨다. 이젠 어떤 말을 해야 하는 지도 대충 알고, 그런 말을 해주며 그 아이와 그 아이의 가족들의 손을 잡았다. 영정사진 앞에서 약간은 침울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절을 했고, 돌아가 자리에 앉아 만난 친구들과는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난 이제 장례식장에서 대놓고 웃을 수도 있다. 무려 엊그제 대학에 입학한 불쌍한 딸 셋을 세상에 남겨둔 체 갑작스런 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영정 앞에서 말이다. 그러면서 이 일에 관련된 문자를 보낼 땐 이모티콘을 뺀다. 이모티콘을 쓰면 안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답답한 공기를 감당하기 힘들어서가 아닌 밀려드는 조문객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앉아서 떠들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윗층으로 올라가 음료수를 마시며 저녁에 어디서 뭘 먹을까를 고민했다. 아래층엔 그 동생의 동기들이 땀을 흘리며 일을 돕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이란 영화에서 김수로는 이런 대사를 한다. '나 사람 맞냐'. 확실히 나이를 먹으니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적어도 표정은 다스리는 법을 배워가는 것 같다. 그나마 또래들 보단 표현이 솔직한 편이지만 모든 것이 인위적이 되어 간다는걸 부정할 순 없다. 어찌보면 인위적이란 문자그대로 정말 인간적인 인간이란 말로 치환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난 이미 어떠한 핑계도 들고 있지 않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의 슬픔을 안아보려는 여유는 부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난 휴머니즘을 지향한다.
고 말한다.
누가봐도 웃기는 일이다.
오늘은 발인을 하는 날이었다.
남자의 일손이 부족해 돕기로 했다.
중요한 수업 오리엔테이션이 2개나 있어서 고민을 했었다.
그래도 혹시나 늦을까봐 아침도 굶어 만원지하철을 타고 뛰어 병원으로 갔다.
후배로 들어온 학생들과 함께 관을 들었다. 맨 앞에서 들었더니 난 키가 큰 편이라 무게가 많이 쏠려 한손으로 들고가기 버거웠다.
화장터로 가는 버스에선 잠이 들었다.
화장을 하는 동안 갈비탕을 먹으며 학교에 갈 지 말 지를 고민했다.
화장터에서 나오며 어린나이에 상주노릇을하는 그 아이를 만나 먼저 가보겠다며 인사를 나눴다.
씩씩한 그 아이에게 해줄 말이 딱히 없었다.
햇빛이 따뜻했지만 바람은 차가웠던, 슬픈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