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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s/from america(not completed)

2012.04.07(토)

by AKHWEE 2013. 5. 21.

 윤상이는 프린스턴으로 기차를 타고 떠났습니다. 윤상이를 보내고 3시부터 워싱턴 스퀘어에서 벌어지는 플래시몹에 참여했습니다. 배게싸움을 했는데 이는 1년에 한 번씩 전세계에서 동시적으로 행해지는 행사입니다. (pillowfightday.com에서 그 일정과 장소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배게싸움을 하러 가는 길에 6th ave에서 꽤 큰 규모로 시장이 열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도로가 통제되고 찻길에는 노점이 들어섰는데 이 마켓은 주말마다 이곳저곳 동네를 돌며 열린다고 합니다. 내일은 유니언 스퀘어에서 다시 열린다고 합니다.

 워싱턴 스퀘어는 뉴욕대학교NYU앞에 있는 공원인데 도착했을 때 이미 먼 곳에서 배게싸움을 하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처음엔 뻘쭘하게 있었는데 지나가던 꼬마애가 자기가 쓰던 배게를 공짜라고 말하며 건내주었습니다. 그것을 들고서 인파속으로 들어가 배게싸움을 했습니다. 마켓 구경을 하느라 배게싸움의 시작시간보단 30분정도 늦게 들어가서 3시 정각에 배게싸움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는 보지 못했습니다. 발 디딜 틈이 없이 빽빽한 곳에서 재미있게 서로 폭력을 주고 받았습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 넘어지거나 안경, 캠코더, 전화기 등을 떨어뜰이면 바로 싸움이 중지되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비도덕적이라 터부되는 것들에 대한 규제들은 스포츠 경기나 카니발 등을 통해서 해소됩니다. (이곳 사람들의 표현을 빌자면) "stupid"한 행동들이나 남의 약점을 파고들어 공략해버리는 행동 등이 이런 행사나 스포츠 경기 안에서는 용인되고 심지어 권장됩니다. 그것이 바로 스포츠와 카니발의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오는 길에는 낮동안 열렸던 마켓이 끝물이었는데, 떨이로 여권지갑과 시즌이 지난 마블 캐릭터 티셔츠 2개를 샀습니다. 

 숙소에 돌아와보니 새로운 형이 한 명 있었습니다. 김태일이었는지 김태연이었는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알고보니 같이 개포동에 사는 형이었고, 마블 티셔츠를 보고 엑스맨 시리즈들이 얼마나 미국의 사회를 대변하고 있는지(백인 vs 흑인의 구도 속에서의 말콤X vs 마틴루터킹이라는 2중의 갈등구조)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영화 속 인간과 돌연변이의 대립은 백인과 흑인의 대립을 상징하고 있었고, 돌연변이 진영 내에서의 사비에르와 매그니토의 갈등은 마틴 루터 킹의 비폭력 투쟁 노선과 말콤 X의 폭력 투쟁 노선의 갈등을 은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굉장히 직설적입니다. 

 처음 본 사람들과의 대화 중 내가 예술 공부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예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합니다. 이 형의 의견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한 순간이라도 그 작품(이 형의 경우엔 주로 영화)에 감정이입이 일어난다면 그 작품은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2시간의 러닝타임 중의 단 1초의 순간, 4분의 음악 속의 한 음, 100호의 그림 속 한 점이라도 감동을 준다면 그 작품은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 그 형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나 음악, 문학은 시간과 서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감정이입이 가능한 기회가 자주 찾아오는 것 같아 조금은 더 대중적으로 향유되지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영화의 경우엔 거의 오감을 다 자극해가면서 감독이 의도한 방향으로 관객을 몰고갈 수 있기 때문에, 더 강렬하고 쉬운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비교적 시간적 개념이 없는 매체인 예술작품들(회화나 조각 등의 미술작품)은 그런 면에서 어필하는 힘이 좀 약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종종 시공을 초월하는 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예대 졸업생 중 작가가 되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교수님들도 너희 중 몇 명이 작가로 남을 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얘기를 학기 초에 하십니다. 하지만 그런 얘기들은 학생들을 채찍질하기도 하지만 패배자로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전업으로서의 '작업'을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타전공)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고 판단하며,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자존심만 남은 작가보다 더 예술가로서의 자부심있는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워싱턴DC에서 묵을 숙소를 예약했습니다.

 숙소에 새로운 남녀가 왔습니다. 이들은 할렘에서 가스펠 관련된 영화를 찍은 후 귀국 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뉴욕 시내로 내려온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