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멋대로 한 번역입니다.
‘우리는 예술창작 시도의 99%가 실패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필립 로페트Phillip Lopate가 그의 저서 『Portrait of My Body』에서 한 말입니다. 비록 ‘예술창작 시도들’이라는 말이 누군가의 글쓰기 스타일에 반反하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으나, 충분히 납득이 가는 말인 것은 확실할 것입니다. 그리고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실제로 실패인 것인지에 대해 전혀 모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의 말을 명백한 진실로서 인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술이라는 말과 함께 실패라는 말을 쉽게 떠올립니다. 그 둘이 함께 떠오르는 이유는 그들이 모더니즘의 역사에서의 핵심적인 부분들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과거의 실패한 예술가를 주제로한 창의적인 글쓰기를 효과적으로 해냈던 작가들이 다루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글은 그것이 쓰이던 당시의 환경을 진실되게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 거대한 이야기의 대표적인 우화인 발자크의 소설 『미지의 걸작The Unknown Masterpiece』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늙고, 맛이 간, 실로 공상적인 화가, 프렌호페르Frenhofer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한 여인의 초상화를 10년째 그리고 있는 화가입니다. 그러나 그가 완성시키고자 일생을 불태웠었던 그 그림이 마침내 공개되었을 때, 그가 볼 수 있었던 것들은 혼란스러운 색의 덩어리들과 뒤범벅된 선들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된 것입니다. 발자크는 프렌호페르가 열망했던 것들—궁극적인 것, 완전히 아는 것, 능력 밖의 것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완벽한 예술이라는 것—이 현실에선 불가능하지 않냐고 ‘의심’에 가득 찬 채 독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사탄과 프로메테우스에 연관지어 발자크를 보자면, 프렌호페르는 바로 죄인입니다. 그의 예술의 가장 깊은 심연을 들여다보는 예술가들의 파우스트로서 말입니다.
발자크의 이야기는 에밀 졸라의 『작품The Masterpiece』이라는 소설을 통해 리메이크됩니다. 이는 살롱 전에 거절당한 화가 클로드 랑티에Claude Lantier가 자신의 ‘걸작(Masterpiece)’앞에서 목을 맸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졸라는 발자크의 소설이 갖고 있던 씁쓸한 주제를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프렌호페르가 자신의 그림을 부순 것과는 달리, 랑티에는 자살로써 자신의 삶 자체를 파괴합니다. 졸라의 작품 속의 화가는 발자크의 화가에게만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사실, 그는 그의 친구인 세잔느에게도 어느 부분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세잔느는 프렌호페르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모습을 강렬하지만 씁쓸하게 발견하였습니다. 그가 많이 고민했던 ‘의혹’은 후자로부터의 불안에서 기인했던 것이었던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프렌호페르 타입이라고 생각했던 또 다른 이가 있습니다. 바로 피카소입니다. 그는 세잔느가 말한 ‘불안’을 프렌호페르의 성격을 규정짓기 위해 발자크가 받아들인 바로 그 단어들 자체라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피카소에게 있어 세잔느의 그 ‘불안’이란, 모든 예술가들을 위해 그가 남긴 유산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헨리 제임스Henry James의 작품만큼이나 예술가에게 있어 ‘의혹’과 ‘불안’에 대해 확실하게 다룬 작품은 없을 것입니다. 그의 작품은 "19세기를 발명한 것은 발자크다"라는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주장을 확인시켜 주기도 합니다. 그 프랑스의 거장으로부터 얻은 교훈으로, 제임스는 발자크를 다시 썼습니다. 『중년기The Middle Years』라는 단편 소설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소설은 늙고, 죽어가는 작가 덴콤베Dencombe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그가 ‘해야만 하는 일들을’하지 않는 이상,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명성이 미완성 위에 서있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결국 이렇게 까지 말합니다. "우리의 ‘의심’은 곧 우리의 ‘열정’이다." 그러나, 발자크를 가장 순수하게 오마주한 제임스의 작품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미래의 마돈나The Madonna of the Future』라는 작품입니다. 이 공상적인 이야기엔 테오발드Theobald라는 화가가 등장합니다. 프렌호페르처럼, 그는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채 몇 년 동안 마돈나를 그립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 그림이 공개되었을 때, 근본적으로는 프렌호페르의 작품보다 심하게 미완성인 그림이 보여집니다. 거기엔 예술의 실패의 궁극적인 상징으로서의 텅 빈 캔버스만이 존재한 것입니다. 그 미완성된 캔버스는 바로 예술의 실패를 가리키는 신호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알베르토 모라비아Alberto Moravia의 소설 『텅빈 캔버스 The Empty Canvas』에서 이 소재는 다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 소설은 캔버스를 채우지 못하는 한 예술가에 대한 실존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비어있는 캔버스는 그의 삶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합니다. 바로 비어있고, 조용하고, 무관심한, ‘비(非)본질적인 밤의 공허’ 를 말입니다.
프렌호페르의 ‘의심’은 러시아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니콜라이 고골Nicolai Gogol이 쓴 발자크의 '호프만네스크적 환상'으로 가득 찬 『초상화The Portrait』라는 괴기스러운 이야기 속에서는 악마에 홀린 차르트코프Chartkov라는 미친 화가가 등장합니다. 그는 ‘내가 정말 재능이 있었던 적이 있던가?’라는 질문을 기묘한 방식으로 풀어냅니다. 사실 프렌호페르 이전의 예술가—에펠레스와 제욱시스에서부터 라파엘로, 루벤스, 푸생과 렘브란트—들에게 이 질문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고골의 화가는 ‘내가 나를 속인 적이 있었던가?’라고 물었을 때, 그가 결국엔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프렌호페르의 궁극적인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던 것일까요? 그의 그런 자기인식의 반응은 폭력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게됩니다. 고골의 화가는 엄청난 양의 돈을 들여 본인의 작업들 대신 파괴할 작품들을 사서 모읍니다. 그 라이벌 작업들을 집으로 가져온 후, 그는 그것들을 잘게 찢어버리고 밟아 뭉개버립니다. 그리고 그 위에서 악마적인 환희를 지릅니다. 그 환희는 그를 삼켜버린 광기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세기가 지나면, 우리는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라는 작가가 그의 친구인 화가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의 드로잉을 지우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악마의 작업이 네오-다다의 익살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Robert Rauschenberg, Erased de Kooning Drawing, 1953; traces of drawing media on paper with label and gilded frame, 64.14 cm x 55.25 cm x 1.27 cm.
때론 작가들이 현대 예술가들의 갖는 실패에 대한 걱정들을 과거 속에 투사해내기도 합니다. 헤르만 브로흐Hermann Broch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베르길의 죽음The Death of Virgil』에서 로마 시인들의 말— 만약 자신이 여정에서 돌아오지 못했을 경우, 자신의 위대한 서사시가 파괴되길 바랬던 그들의 언어들 —을 아름답게 그려냈습니다. 오직 지금 브로흐의 책에서만, 베르길과 아구스투스 간의 ‘상상의 대화’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시인은 자신의 시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할 만할 정도로 ‘불완전함’에 깊히 빠져들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시의 무능함에 대해 맹렬히 욕합니다. 고대의 프렌호페르처럼, 씨저의 반응은 베르길을 비난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베르길에게 ‘너의 상황을 보면, 그 모든 예술가들이 작업에 성공에 대해 품고 있는 의심이란 것이 광적인 것으로 퇴보하고 있구나’라고 말합니다. 거대한 역사적인 모순 속에서, ‘걸작’이라는 그 관습적인 개념에 대해 정의하는 작품을 하고자 했던 베르길은 모던 시대가 지닌 모더니즘의 불쾌로 스스로를 괴롭힌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술적인 무능력에 압도되었습니다. 그는 걸작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었었다고 말해야 하는지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형상화한 그 서사시를 성취하는 것이 불가능하단 것을 보여주고 있던 것입니다.
예술적인 실패에 대한 감각은 모더니스트들의 허구의 방에 메아리 칩니다. 그의 위대한 소설의 한 구절에서, 프루스트Proust는 가상의 소설가인 베르고트Bergotte가 그가 베르메르Vermeer의 <델프트의 풍경View of Delft>을 볼 때,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을 가지고 자신의 일생의 모든 작업들에 대해 숙고하게 만들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썼어야 했어… 지난 책들은 너무 무미건조해, 난 그것들을 몇 겹의 색들로 수정했어야 했어, 나의 언어들을 그 자체로 더 엄밀하게 만들었어야 했어, 마치 저 노란 벽에 붙은 작은 스티커처럼.’ 발자크와 제임스에서 처럼, 화가에게 있어 그의 예술은 거울과도 같습니다. 거기에서 작가는 그만의 실패작들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화가들은 소설가가 가지고 있는 자기-의심, 불완전함에 대한 감각과 걸작을 창작해내지 못할 무능함의 구현체와 다름아닌 것입니다.
Johannes Vermeer, View of Delft(Gezicht op Delft), 1660-1661, oil on canvas, 98.5 x 117.5 cm.
모던 예술가들의 혼란을 알려주며 모더니즘의 허구를 고발하는 프랜호패르가 여전히 우리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것이 아닐 것입니다. 요즘 나온 영화 중에 자크 리베트Jacques Rivette의 《누드모델La belle Noiseuse(1991)》을 봅시다. 이는 발자크의 스토리를 자유롭게 재구성한 것입니다(프랜호페르에게 피카소적인 인격을 부여했습니다). 프렌호페르와 피카소만의 불안한 공감은 최근에 뉴요커New Yorker지에서 다시 다뤄졌습니다. 거기서 비평가 아담 고프닉Adam Gopnik은 피카소를 ‘전에 없었던 가장 위대한 거장’이라고 묘사했습니다. 무의식적인 발자크와 발자크의 캐릭터와의 피카소만의 강렬한 공감이 메아리 치면서, 비평가는 보편적인 모던 회화들이 만드는 것들에 대해 말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의 빛나는 의미나, 안전한 성취, 그리고 깔끔한 옛 거장적 커리어를 제공하는 것이 불가능하단 것이다’. 고프닉의 이러한 냉소를 통해, 프렌호페르의 실패는 비로소 그것의 그림자를 우리 시대의 너머로 떨쳐버립니다. 오든Auden이 아마 예술적 불안의 시대라고 말했을 그 시대의 너머로 말입니다. (…)
이 (반복되는) 이야기는 사실 끔찍한 것이지만, 외면해서도 안될 것이고, 실제로도 계속해서 이야기되고 있기도 합니다. 발자크Balzac와 졸라Zola, 재임스James, 고골Gogol, 슈보브Schwob, 리슈팽Richepin, 프루스트Proust, 베어본Beerbohn, 레오 스타인Leo Stein, 브로흐Broch, 모라비아Moravia, 윌포드Willeford, 반즈Barnes에 의해, 전 세계 의 우화들에 의해, 그리고 세계 역사의 중요한 일부로서의 모던 아트와 문학, 모더니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로 불리는 것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이들 중 많은 작가들은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거나, 잊혀졌거나, 무시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발자크, 프루스트, 제임스, 브로흐로부터 우리는 달아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더니즘의 이야기를 정의하는 것에 중요한 일부가 되어있는 그들과 마주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더니즘의 모순 바로 그 자체가 이들의 업적인 것입니다. 그 모순이란 카프카Kafka의 『배고픈 예술가hunger Artist』에서처럼 높은 지위를 열망하는 예술은 결국엔 최후를 맞이 했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 카프카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처한 예술적인 비루함, 포기, 소멸은 곧 '그로테스크한 자아-박탈'(자살)로서 귀결됩니다. 이 이야기는 딱 보기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례로 끝없이 확장될 수 있을 것입니다. 피터 애크로이드Peter Akroyd의 『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증언The last testament of Oscar Wilde(1983)』의 주인공은 ‘나는 나만의 재능을 배신해버리고 말았어’ 라고 결론 지으며 그의 궁극적인 실패를 주장합니다. 토마스 베른하르트Thomas Bernhard의 『몰락하는 자The loser(1983)』에서는 베르트하이머Wertheimer라는 피아니스트가 나옵니다. 그는 그의 학교 친구인 글렌 굴드Glenn Gould의 솜씨를 따라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자살로서 그의 예술을 포기하고 맙니다. 또한, 안토니오 타부키Antonio Tabucchi의 『꿈의 꿈Dreams of Dreams(1992)』에서의 오비디우스 우화를 보면, 무섭고 불쌍한 최후를 맞는, 거대한 나비가 되는 꿈을 꾸는 고대의 시인이 등장합니다. 오비디우스는 그의 시를 아우구스투스에게 낭송하며, 벌레가 낼 법한 알 수 없는 소리들을 내뿜었고, 황제에게 잔인하게 거부 당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브로흐의 소설 속 베르길과 아우구스투스의 관계가 뒤바뀐 것처럼 말입니다. 오비디우스의 이야기를 그레고르 삼사Gregor Samsa가 벌레로 변신하는 이야기로서 카프카의 다시 쓴 것처럼, 타부키는 카프카를 다시 썼습니다. 하지만, 삼사는 적어도 말은 할 수 있었지만, 나비가 된 오비디우스는 전혀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오비디우스라는 캐릭터들이 묘사하는 것 처럼, 타부키의 오비디우스도 언어의 재능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단어라는 시의 매체를, 곧 시 그 자체를 상실한 것입니다. ‘저의 시를 들을 수 없나요?, 오비디우스는 울었다… 그러나 그의 울음소리 조차 희미한 휘파람일 뿐이었다.’ 꿈이라기보단, 타부키가 쓴 오비디우스의 꿈은 악몽에 가까웠습니다 . 그리고 그것은 다름아닌 예술가들의 궁극적인 실패에 대한 악몽입니다. 모순과 농담들, 패러디, 익살, 그리고 프루스트와 제임스, 피카소, 뒤샹, 리슈팽과 반즈의 속임수에도 불구하고,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모더니즘 이야기 속의 악몽말입니다.
Paul Barolsky, extracts from ‘The Fable of Failure in Modern Art’, The Virgina Quarterly Review, Summer 1997 (Charlottesville: University of Virginia, 1997) 395-404.
언급된 도서
발자크 <미지의 걸작>
에밀 졸라 <작품>
헨리 제임스 <중년기>
헤르만 브로흐 <베르길의 죽음>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란츠 카프카 <배고픈 예술가>, <변신>
피터 애크로이드<오스카 와일드의 마지막 증언>
토마스 베른하르트<몰락하는 자>
안토니오 타부키 <꿈의 꿈>
영화
자크 리베트 <누드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