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센흐라흐트에 있는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갔다. 사람이 많았지만 그래도 줄은 움직였다. 오토 프랑크(안네 프랑크의 아버지)의 식료품 공장 창고에서 8명이 3년을 숨어 지냈을 때 비밀 입구로 쓰였던 유명한 책장과 이들이 생활햇던 방 다섯 개를 보러 끝도 없는 관광객들이 이곳을 매일 방문하고 있다. 비극적이게도 프랑크와 그 가족들이 누군가의 밀고로 1944년 체포되어 수용소로 보내진 당시는, 연합군이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기 직전이었다. 몇 주만 더 은신할 수 있었더라면 이들은 구조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 8명 중 7명은 수용소에서 목숨을 잃었고 안네의 아버지만이 살아남았다.
안네 프랑크 박물관은 유대인에게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났는지를 잘 보여주는 곳이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목숨에 위협을 느끼면서 프랑크 일가를 도운 네덜란드 사람들과, 이들 같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는 것이다. 오토 프랑크의 비서였던 미프 기스는 식량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배급 체제 속에서 자신과 남편뿐 아니라 매일 8명 분의 식량을 구해야 했다. 위험할 뿐만 아니라 극도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2만 명이나 되는 네덜란드 사람들이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전쟁 기간에 유대인들을 숨겨주었다. (...) - 빌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pp.145-6.
당신이 감정이 100% 매말라버린 냉혈인이라도, 저런 행동은 해야만 한다. 인간이라면 말이다.
인간성이란 정서적인 측면에서만 진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이성적인 영역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인간이라면 인간성에 도전하는 부당한 권력이나 각종 폭력에 대해서 저항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