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13회 송은미술대상에서 수상하신 박혜수 작가님의 작업을 보면서 떠오른 인터뷰.
'미술'로써 발언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굳이 그래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 그리고 과연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라는 질문을 염두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홍승혜 선생님의 말씀은 대단히 치밀하고 뼈가 있다. 어깨를 밟고 올라서야 할 거인을 만났다는 기분이 들어서 희열을 느꼈었다.
(내용 전달에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중간중간 재미를 위해 장난을 조금 쳐놨는데 문제가 된다면 조치하겠습니다.)
이은우: 대학 입학 후부터 계속 작업하고, 일했어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갈 때 사춘기처럼 방황하는 시기가 있다고 하던데, 요즘 제가 그런 시기인지도 몰라요.
홍승혜: 뭘 하면서 돈을 벌었어요?
이은우: 단편영화 제작팀에도 있어봤고,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도 있었어요. 잡지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잡지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신나게 일했어요. 특히 늘어놓은 원고와 도판을 새로 배열해서 맥락을 만들어내는 작업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가장 재밌었던 것이 박이소씨 특집이었는데, 그때 제가 잘 몰랐던 박이소씨의 옛날 작업부터 조카에게 보냈던 편지들까지 거의 모든 자료들을 수집하면서 작가의 사는 방식과 작업, 작가라는 개인이 맺을 수 있는 관계나 방향성 같은 걸 알게 되었어요. 요즘도 책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설프긴 하지만 디자인도 하고 편집도 해요. 디자인도 편집과 별다른 일이 아니어서 맥락이 있으면 디자인은 저절로 나오거든요. 수집한 데이터를 재배열해서 예상치 못했던 맥락을 도출시키는 일이 작업으로 연결되는 것 같아요.
요즘 관심있는 것은 펜타그램(오각형 별)과 세룰리언블루(밝은 청색)처럼 다의성이 있는 기호와, 그 외에도 이야기가 구축되는 방식 같은 것들이에요. 가끔은 이유 없이 지하철 타고 다니면서 지나가는 사람을 관찰하며 메모합니다.
홍승혜: 기호라는 형식에 관심을 갖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은우: 국기를 다루는 것에 대해 거대담론에 대한 관심이라고 해석한 평론가도 있지만, 그런 것보다는 기하학적 형태와 기호 자체가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대한 관심이 먼저인 것 같아요. 기호의 기하학적 모양새와 그 속뜻에 대한 관심이 국기로 이어진 거죠. 펜타그램이나 세룰리언블루처럼 국기도 한 형태가 여러 가지 의미를 갖고 있거든요. 제 작업은 국기에 내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의미들 중 특정한 의미를 저만의 방식으로 재배열해서 단일한 형태로 만든 것이에요.
정치적 의미를 담은 작품들이 하나의 발언으로 끝나고 말면 회의가 들어요
홍승혜: 바로 그 부분이 제가 제일 궁금했던 점이에요. 그렇다면 기하학적 도형으로 드러낼 수 있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을 텐데, 은우씨는 정치적인 메시지를 많이 다뤘더라고요. 사회정치적 관심이 기하학적 도형과 만나는 지점이 무엇인지, 왜 미술이란 형식으로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그런 표현이 갖는 가능성은 무엇인지 듣고 싶어요.
이은우: 국기에 대한 작업만 보아도, '평화' '자유' '독립'…… 이런 의미들은 제가 의도한 것들이 아니라 국기에 있는 색과 기호가 대체로 그런 뜻을 띠고 있어요. 저는 제 작업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그런 지점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정치란 생각보다 사는 형태에 영향을 많이 끼치고, 제 작업은 제가 부릴 수 있는 정치라는 생각도 해요. 다른 작가들도 모두 그런 것 같고요.
홍승혜: 저는 정치사회적 미술이라는 것에 대해 콤플렉스와 불만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사회적 현상이나 제도에 무지하고 무심하다 보니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일까 때로는 염려가 되다가도 정치적 의미를 담은 작품들이 단지 하나의 발언으로 끝나고 말면 회의가 생기곤 했죠. 그런 발언의 영향력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가졌거든요. 은우씨는 미술로 정치적 발언을 한다는 것이 직접 정치를 하거나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해요? 레닌이 지주와 소농의 토지 비율을 비교하기 위해 만든 그래프를 변형해 만든 은우씨의 작품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이은우: 그 작업은 레닌이 1905년에 그린 당시 러시아의 대지주와 소농의 땅 크기를 비교한 그래프에서 지주와 토지에 해당하는 면을 장애인,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 등 이른바 '사회적 소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한 통계 자료로 치환한 작업이에요. 사회적 소수자보다는 그런 통계들이 비춰지는 미디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한 작업이었어요.
저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치적인 미술에 대한 불만이 있어요. 사회적 발언을 하는 미술을 할 때 결국 정치를 포함한 '행동'으로 연결돼야 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미술의 딜레마인 것 같아요. 주제 사라마구나 미시마 유키오처럼 평생을 정치적 활동과 아트를 병행한 사람을 보면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하죠.
홍승혜: 아직 젊어서 입장이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본인이 갖고 있는 회의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음악이나 문학 같은 다른 매체처럼 미술도 미술만이 할 수 있는 고유의 기능이 있다고 믿어요. 어떤 정치적 메세지가 미술로 표현될 때, 그때의 형상이 기하학적이라면, 왜 그것이 반드시 그래야 하는지가 미술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 이런 형상이 나오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제시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보여야 한다는 거죠.
은우씨 작업에서는 때로 기표와 기의의 화합이 어렵게 느껴졌고 본인의 진정한 관심이 과연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가져봤어요. 그 의문을 갖게 된 구체적인 계기는 폭격화염을 옮겨 그린 「어느 멋진 날」이라는 드로잉 연작이 갤러리175(2007년)와 대안공간루프(2009년)에서 매우 다르게 배열된 것을 본 후였어요. 작품 배치가 미술에서 결정적인요소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두 장소에서는 나름대로 굉장히 미학적으로 고려해서 배치한 듯 보였거든요. '이런 형식적인 관심이 본인이 하고자 하는 작업의 내용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나친 형식적 배려가 오히려 내용 전달에 방해가 되었던 거죠.
중국 상하이에 15일간 있으면서 그때의 행동을 모눈종이 위에 선형적으로 기록한 작품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은우씨는 계속 조형적 균형의 문제를 논하고 있어요. 「어느 멋진 날」, 「구글 랜드스케이프2006」같이 정치적인 내용을 소재로 삼고 있는 작업에 비해 비약적인 변화가 있어 보였죠. 작품에 정치성이 강하다는 것은 그렇게 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해석이 아닐까요.
이은우: 메시지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시각화할 것인가 하는 방법론 자체에 관심이 많아요. 「어느 멋진 날」의 배열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런 관심의 연장이겠죠. 갤러리175에서는 데이터가 되는 사진이 찍힌 곳의 알파벳 순서대로 배열했고, 대안공간루프에서는 사진이 찍힌 곳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배열했어요. 작업의 배열은 관객에게보다는 설치하는 사람, 그러니까 작가에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것이 전시 전체의 이미지와 완성도를 결정하거든요. 요즘은 전시를 볼 때 작업을 먼저 보고 디스플레이를 한 번 더 봐요.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서사성이 있는데 그것이 작업들과 잘 조화되고 있느냐 하는 걸 보는 거예요. 특히 제 작업처럼 투입되는 데이터에 의해, 나오는 결과물의 형태가 결정되는 경우에는 디스플레이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작업마다 규칙이 모두 다른데, 그건 규칙이 작업에 쓰이는 데이터의 종류와 성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그래요. 하지만 규칙들은 대부분 순열적이고 연역적인 과정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작업을 보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오해받는 것 같아 불편했어요. 하지만 크게 마음을 두지 않아요. 다들 그 나름의 보는 방식이 있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 같아요
요즘은 각자 다르게 해석하는 것도 재밌다고 생각해요
홍승혜: 오해가 있다면 그런 부분이 이야기되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내 작업이 진정 무엇인지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못 해석하고 있다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고 그런 상황을 용인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이은우: 물론 작업을 읽는 법에는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어떤 포인트가 있지만, 그것이 옳다고 전제하게 되면 미술은 수학이나 과학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물론 사람들이 제 작업을 이해하는 모든 방식을 받아들일 수 는 없어요. 그저 다음에 작업할 때는 이런 공통적으로 느끼는 포인트를 더 넓혀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평론가의 언어와 작가의 언어는 분명히 다른 것 같아요.
홍승혜: 그래서 제가 자꾸 작업의 시스템에 관해 물어보고 싶은 거죠.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부분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부분은 뭘까? 자기를 구속하는 스스로의 프레임이 뭘까? 다양한 별의 의미를 이용해 만든 작품 「평화: 오각별, 육각별/백/기울임」도 결국 시각적인 것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요. 시각적 흥미로움의 정체가 작업의 내용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제 경우 형태는 '자연발생적'일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것은 기하학적 형태에서도 가능하죠. 은우씨가 앙케이트나 리서치를 통해 주어진 데이터를 작업의 출발점으로 삼는 것도 제게는 그러한 자연발생적 형태를 유도하는 장치처럼 느껴져요.
이은우: 선생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구속하는 프레임, 저도 저에게 그게 무엇일지 생각해요. 어쩌면 열심히 일하는 것, 그러니까 어떤 성실성이 그 구속의 프레임일 수도 있겠지요. 자신이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좋아하는지 같은 질문이 작업을 하면서 점점 구체화되는 것 같아요. 전에는 이런 것이 단순히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취향보다 더 지독하고 근본적인 무엇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상황이 달라짐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부분은 뭘까?
자기를 구속하는 스스로의 프레임이 뭘까?
홍승혜: 스물여덟 살이면, 저는 아직 시작도 못했을 때예요. 내 세계라는 것이 뭔지도 몰랐고 방황도 많이 했어요.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좀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아요. 내 작업에 대해서 몇 마디라도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은 얼마 되지 않았고요. 그 전에는 그냥 좋아서 하는 거였어요.
은우씨의 경우 벌써 개인전도 몇 번 했고, 앞으로도 개인전이 잡혀 있고, 템포가 빠른 편이죠. 그래서 오히려 더 생각이 많을 수도 있고요. 작업에 대한 생각은 당연히 변해요. 앞으로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변할 거예요. 사람들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죠. 반드시 시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저도 수많은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어요. 비주얼은 물론이고 생각, 태도 등 여러 가지 면에서요.
요즘은 정치적 이슈를 무용가 등 타인의 신체를 통해 행위로 표현하는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에 매력을 느껴요. 어떠한 오브제나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서 막강한 존재감을 각인시키는 그의 작업이 부러워요. 왜냐면 내게 물질계가 점점 힘겨워지고 있기 떄문이죠. 미술에 있어 물질은 생각을 구현하기 위한 토대죠. 물감에 현혹되어 그림을 시작했고 기하학적이고 건축적인 것에 관심이 생기면서 철, 타일, 나무 등 구축적 재료를 사용했어요. 물질의 매력 또한 제겐 완전히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기는 하지만 살다 보니 작업의 잔여물들이 샇이면서 부담이 생기기 시작한 거예요. 물건이 쌓이다 보면 생겨나는 실제적 문제들, 예를 들어 작가라면 누구나 느끼겠지만 보관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죠. 결국 작업의 태도는 자기가 실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변화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지나온 제 작업도 콤플렉스 극복의 역사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은 보이지 않는 기하학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물체와 물체 사이의 거리, 관계 같은 것들이요. 그러다 보니 레디메이드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됐고요. 2008년,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에서 보여주었던 해당 연도 수상자를 위한 시상식장 디자인이 실례죠. 전체 공간의 용도별 분할, 내빈석 의자를 비롯한 시상식 집기의 배치 및 조명, 현수막 디자인 등이 내용을 이루었죠.
플래시 애니메이션도 그런 비물질적 잡업의 일환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소리도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이면서 작업의 폭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최근 열었던 <음악의 헌정> 전은 이러한 소리의 기하학적 공간성을 시각화한 작업이라 할 수 있어요.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작업은 변화하는 것 같아요. 저도 은우씨처럼 변하고 있는 거죠. 몇 년 전만 해도 티노 세갈에 관심을 갖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안광휘: 티노 세갈이라 하니 왠지 슬퍼지네요.
이은우: 그리드를 벗어나는 작업을 계획 중이라는 인터뷰를 봤어요.
강한 원칙주의는 때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는 면이 있어요.
홍승혜: 10여 년 동안 그리드라는 감옥 속에서 비교적 안정된 자유를 누렸어요.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잖아요. 수평과 수직 체계에서 해방되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입체 작업을 하면서 그런 욕구를 더욱 강렬하게 느꼈어요. 실상 모니터의 그리드에서 형성된 도형들이 모니터 밖으로 나와 실재 공간을 점유하다 보면 시선에 따라 탈 그리드 현상이 일어나죠. 그것을 목격하면서 역동적 사선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몬드리안(Piet Mondrian)과 판 뒤스뷔르흐(Theo Van Doesburg)의 일화가 생각나네요. 수직 수평을 절대적 원칙으로 삼아 불변의 질서를 구축하려 했던 두 사람은 판 뒤스부르흐가 사선을 쓰기 시작하면서 결별하게 되죠. 가끔 몬드리안에게 컴퓨터가 주어졌다면 작업이 어떤 식으로 진화했을까 상상해봐요. 강한 원칙주의는 때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하는 면이 있어요. 정작 빠져나오고 싶을 때 어려워지는 거죠. 해방감이란 안정감만큼이나 매력적이에요. 그리고 해방감은 구속이 있어야 가능하죠. 사물의 양면이 이처럼 치고 받다보면 계속 반동이 이루어지면서 작업이 진화되는 것 같아요. 제가 작업해온 여정을 보면 미술사의 전개 과정을 하나씩 밟아온 느낌이에요. 개체발생이 계통발생을 되풀이하고 있는 거죠.
<...중략...>
작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각적으로 문제를 이끌어내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닐까요
홍승혜: 정치적 미술, 사회비판적 미술에 대해 생기는 회의는 그런 것들이 대개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은 피상적인 경우가 많아요. 그들의 배경을 세세히 알기 어렵기 때문이죠.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미시적으로 관찰할 때 오히려 인간에 대한 구체적 비판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이 발언한 문제에 개인적으로 어떤 대안을 가지고 있느냐가 소박하지만 문제 해결의 실질적 출발점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소유 비율을 이야기할 때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도달하면 굉장히 막막해져요.
이은우: 그런 문제들을 피상적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은 정말 가족도, 친구도, 돈도, 명예도 버리고 목숨을 걸고 문제들에 맞서요. 자기가 무얼 하건 간에 그것에 추동력이 되는 것은 자기 자신인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이 어떤 조건과 환경에 처해 있느냐에 따라서 시야가 변화하는 것 말이에요. 작가는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도 해요. 작가는 문제 해결보다는 감각적으로 문제를 이끌어내는 데 재능이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해결은 UN사무총장이나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몫이고요. 물론, 해결도 결국은 모두의 몫이겠지만요. "반항아는 어떤 가정에서나 있을 수 있는 법이고, 집안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온갖 성가신 말썽을 일으키지만, 집안을 붕괴시키기보다는 그 안에 작은 놀이터 하나를 가질 뿐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홍승혜: 제가 비판하는 건 바로 작가는 '감각적'으로 문제를 도출하는 사람이고 해결은 정치가의 몫이라는 생각 자체죠. 그것이 바로 문제를 피상적으로 만드는 지점이고요. 발언의 주체는 그러한 사회적 문제에 전혀 책임이 없다는 태도를 내심 드러내고 있어요.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사회에 영원히 문제가 존재할 거라면 똑같은 문제를 매번 반복해서 발언할 필요는 없죠. 대리면 아프고, 도둑질해선 안 되고, 많이 먹으면 배탈 나고. 사회적 문제란 시대를 막론하고 이처럼 상식적인 것들을 거부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잖아요. 문제 해결에는 크고 작은 방식이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미술이, 그리고 작가가 사회적 문제 해결의 작은 방식이길 기대해요. 저는 개인적으로 미술, 또는 예술의 정화 기능을 믿어요. 사회적 구조의 급진적 변화를 원한다면 정치를 해야겠죠. 정치를 하지 못하겠다면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내가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미술이 이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 것과 같아요.
이은우: 정치적인 이야기를 '작가'가 했을 때는 분명히 다른 의미가 된다고 생각해요. 미술이라는 경계가 없으면 그저 백수밖에는 안 될 작가라는 사회적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면, 사회 안에서 포착되기 힘든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꾸준히 생산하면서 이야기하는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작가는 어쩔 수 없이 사회에 어느 정도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사회가 갖고 잇는 정치적 지형의 성격이 너무 세서 미술이나 문학 등의 입지가 위축되는 것 같긴 해요. 2008년 광우병 우려 관련 시위 당시, 경찰이 광화문에 컨테이너를 쌓아 벽을 만들면서 독특한 형상을 만들어냈을 때, 무력감 같은 걸 느꼈어요. 이제는 이 작업이 작가로서 하는 작업인지 시민으로서 하는 작업인지 잘 생각해봐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제가 비판하는 건 바로
작가는 감각적으로 문제를 도출하는 사람이고
해결은 정치가의 몫이라는 생각 자체죠
홍승혜: 그렇기 때문에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정치적 발언은 정치가도 시민도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건데, 그것을 미술로 해야 되는 당위성이 발견되면 감동적이고 의미있는 것으로 다가오겠죠. 예술의 입지를 주장한다면 바로 그런 지점이어야 할 것 같아요. 정치적 지형들의 영향력 때문에 예술이 위축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또 다른 정치적 권력 다툼의 시작이죠. 예술이 다른 사회적 영역들과 대결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 말이예요.
이은우: 「아트페어의 기본 윤리」라는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아트페어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런 그림은 되는데 저런 그림은 안 된다는 강령 같은 텍스트로 구성된 작업이었어요.
홍승혜: 아트페어에는 다른 어떤 사회적 제도와 마찬가지로 분명 역기능이 있죠. 하지만 그런 현상을 소재 삼아 계속 얘기하면서 뭘 기대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미술가는 그런 점을 비판하기보다는 묵묵히 자신의 예술적 가치관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거기에 휩쓸리지 않는 나 자신이 그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에겐 문제가 많아요. 자기 자신, 가족 친구들……. 개인의 문제가 개선되면 사회 전반의 문제도 개선될 것 같아요. 비행기 재난 발생시 산소마스크를 제일 먼저 착용해야 할 사람은 자기 자신이잖아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건넬 수 있죠.
안광휘: 그리고 예술을 지나치게 신성시하는 행위는 오히려 오만에 가깝게 느껴지기도 해요.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이란 프랑스 미술가 로베르 필라우(Robert Filliou)의 유명한 역설은 예술과 삶의 위계질서에 대한 매우 명쾌한 해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삶이 예술보다 더 흥미롭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모든 사람을 예술가로 만들어주는 예술가를 꿈꾸며, 끝없는 네트워크, 만민의 축제를 얘기한 로베르 필리우야 말로 진정한 좌파예요. 조용히 발언하며 실천적 삶을 살았던 작가의 예술이야말로 제게는 진정한 '정치적 미술'처럼 보여요. 좌파적 사상의 핵심은 휴머니즘이 아닐까요.
이은우: 저는 미술 외에, 글쓰기에도 관심이 많고 좋아해요. 보통 작가들이 드로잉을 하듯 저는 항상 무언가를 쓰는데, 이런 습관과 글을 쓰면서 느끼는 희열감을 어떻게 작업에 녹여낼 수 있을지 생각해요. 한동안은 작업에 대한 생각이 너무 자주 바뀌었어요.
홍승혜: 저도 20, 30대에 극심한 방황의 순간들이 있었어요. 왜 그토록 많은 직업 중에 이처럼 어려운 길을 택했을까 심각하게 후회한 적도 있어요. 마흔 살을 넘기면서 비로소 내가 뭘 원하고 뭘 할 수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었어요. 쉽게 말하자면 주제 파악을 하기 시작한 거죠. 삶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조망할만한 일정한 기간이 흐른 거예요. 20대 작가들을 보면 젊음이 갖는 혈기와 발랄함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 갈 길이 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번민하는 예술가들을 보면 내 젊은 날이 떠오르면서 연민이 생겨요. 절대로 불행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예술 때문에 불행한 거예요. 그렇다면 예술 하지 마세요. 예술은 하나의 위안이어야 해요.
안광휘: 사랑합니다.
모두: 사랑해요.
<...후략...>
김지연·임영주 엮음,《예술가들의 대화》,pp. 288-317.
홍승혜, 「말나무」, 지주 간판, 마로니에공원, 서울, 2005. ⓒ아르코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