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ords/written

자율성, 사회성

by AKHWEE 2015. 6. 29.

나는 지난 3월에 출간한 문혜진의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현실문화, 2015)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계속 발생하는 여러 핑계들로 진행이 몹시 더딘 상태였다..ㅜ 그러다가 여기서 정치적 미술에 대한 글을 연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 책과 관련하여 떠오른 질문이 있어 먼저 던져 놓으려 한다..


얼마 전 개콘의 <민상토론>이라는 방송을 두고 시끄러웠다. <민상토론>은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코너인데, 지난 22일에 방송에서 그 코너가 빠져서 논란이 생겼었다. 몇몇 사람들은 외압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재기했지만, 방송 관계자는 아이템이 부실하고 완성도가 떨어져 방송에서 뺀 것이지 외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람들은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었다. 개그를 개그로 이해 못한다며 정치권을 보며 속이 좁다고 비난했다. (아이템이 훌륭해서인지 여론을 의식해서인지는 모르지만 <민상토론>은 29일에 2주만에 다시 방송을 탔다.)


이 일과 함께, 데이브 히키의 《보이지 않는 용》에서 언급했었던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X 포트폴리오> 전시 사건이 떠올랐다. 히키는 그 글에서 포르노성 사진 작업을 전시한 메이플소프 만큼이나 그의 작품에 분노해 예산을 대폭 삭감해버린 의원을 옹호한다. 메이플소프가 그런 작업을 만들 수 있는 자유가 있는 만큼, 그 의원에게도 그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를 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예술은 예술일 뿐, 오해하지 말자”는 식의 태도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논쟁과 발언을 차단해버리는 비민주적이고 폭력적인 장치가 되어버린다고 히키는 지적한다.그렇다면 단순히 개그일 뿐인 것에 부들부들 하는(할)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면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쉴드를 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일까?


다시 말해, 예술의 ‘자율성’과 ‘사회성’(자율성의 외적인 것들-사회적, 윤리적, 정치적 등-을 퉁쳐서 이렇게 부를 수 있다면..)의 문제인 것이다. 어딘가에서 자율성에 대한 논쟁은 이제 올드한 이슈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여전히 내 주변에서는 매우 일상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기에 이 글을 쓴다. 이는 <민상토론> 뿐만 아니라, 당장 미술계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예술의 ‘자율성’은 그것의 ‘사회성’과 대립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확실히 자율성에 무게를 실을 수록 사회적인 발언의 힘은 작아질 것 같다. 그렇다고 그것을 예술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포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정치적, 사회적, 윤리적인 가치를 위해 예술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과정에서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는 쉴드를 치고 들어가는 것은 말 그대로 모순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나뿐인 것일까? 만약 우리 사회가 “예술은 예술일 뿐”이라는 쉴드가 전제된 상태라면, 그것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예술로써 우리가 발언하는 모든 방법들은 단지 이 사회가 굴러가게 만들어주는 배설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예술의 기능만 수행한다면 예술은 우리 사회를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게 해주는 순기능을 하는 거긴 하겠지만, 뒤집어 말하면 그것은 이 사회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해나가기도 많이 힘들거라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고민과 대화가 그런 예술을 위한 것이라면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다.


나는 ‘정치적 예술’이라는 것의 정확한 정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말이 가진 뉘앙스가 예술로써 현재 우리의 삶을 긍정하고 순응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는 것은 느낄 수 있다. 오히려 그것은 나 혹은 우리에게 가해지는 각종 형태의 부당한 폭력에 저항할 수 있는 권력을 얻기 위한 예술에 가까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정치적 예술’을 통해 우리가 희망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선 예술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경험해왔던 ‘예술’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띠었으면 좋겠다.


크리틱칼에서 연재 하는 정치적 미술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