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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written

싸이어리

by AKHWEE 2011. 3. 15.
2010.12.03 금 01:19
그것이 크든 작든 의미부여는 쓸데없지만, 괴롭기도 즐겁기도 한, 아름다운 것으로서 마치 예술과도 같은게 왜냐면 그 안에선 무한하든 유한하든 그 양 극단을 오가며, 그것이 좋은 감정이든 아니든, 어떤 감동을 자아낼 수 있기 때문인듯한게..(열린결말)

2010.11.28 일(2010.11.29 01:35)
나는 오늘처럼 추운날엔 따뜻하고 안전한 벤틀리가 필요함을 느낀다. 벤틀리는 그것을 당장 구매할 수 있는 구매자와 더불어, 나같은 한푼도 없지만 돈이 된다면 언제든지 그것을 사리라 다짐하는 미래의 구매자까지 확보하게 된다(내 취향상 허머같은 4륜차를 살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비약을 한다치고 볼 때 당신이 누군가에게로부터 동경과 애정을 받고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최소한 행복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고로 당신의 삶도 행복하다. 또한 행복할 것이다. 당신이 그렇다면 나도 그럴 것이다. 결국 그것은 쟁취할 필요가 없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이미 그것은 발견한 사람의 것이기 때문이다

2010.11.15 월(2010.11.16 01:48)
우리식구는 할머니와 함께 산다. 올 봄부터 우리집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릴 땐 가끔 우리집에 놀러 오셔서 나랑 공기놀이를 하거나 조용히 뜨개질을 하거나 하셨었는데 이제와 반년이 훌쩍 넘은 긴 시간을 함께 생활해보니 할머니가 많이 늙었구나 세삼 깨닫게 된다. 분당에 살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0년도 더 된 옛날, 나는 자전거 뒤에 동생을 태우고 한 손에 우산을 쓰고 드래곤볼 비디오를 빌리러 갔다온 적이 있다. 나는 거의 매일 드래곤볼을 봤고 본 것을 또 봤으며 다시 보고 싶은 장면이 있으면 또 보곤 했었다. 비디오도 보고 만화책도 보고 했는데 만화책은 미용실에서 아이큐점프라는 월간지를 통해 미리미리 봐뒀다가 단행본으로 출간되면 마음 속으로 찜해뒀다가 우리집에서 구역예배나 반상회를 열 때 동네 아줌마들과 함께 모여있는 엄마한테 졸라서 돈을 받고 직접 사서 보고, 따라 그림도 그려보곤 했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아줌마들이랑 수다를 떨어야 하기 때문에, 평소와는 다르게도, 나의 성가신 징징거림에 너무도 쉽게 지갑을 열곤 하셨었다. 어쨌든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고 드래곤볼을 빌리러 갔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것은 그날 홀딱 젖어서 집에 들어온 나와 동생을 보고 할머니가 나한테 야단을 치셨기 때문이다. 맨날 공기놀이나하고 뜨개질하는 할머니한테 혼났던 기억이 아직도 내 머리속에 있다는 것은 돌이켜 볼 수록 재밌는 추억이다. 지금의 할머니는 너무도 늙어서 (다섯째 자녀인 우리 아빠가 52살이니 할머니는 80대 중반 쯤 되셨을 것이다.) 지팡이 없인 걷지도 못하고, 간단한 조깅이나 농구나 축구도 못하고, 혼자선 두꺼운 이불도 잘 못들고, 현관문도 쎄게 못닫으신다. 현관문을 자꾸 닫다 말아서 한밤 중에 경비시스템이 작동된게 한 두번이 아니다. 노인은 잠이 없다고 하는데 우리 할머니는 잠도 많고(원래는 노인들은 잠이 없는줄 알았는데. 근데 사실 같이 살아보니 노인들이 잠이 없어보이는 이유는 일찍 잠들기 때문인 듯하다. 일찍자면 일찍일어나는게 세상이치 아니던가. 할머니는 해만지면 여기저기 따뜻한 곳을 찾아 몸을 눕히기 시작하신다) 앉았다 일어났다 할 때마다 아이고 죽겠네 따위의 말들을 많이 한다. 충격적인 것들을 몇년전 뇌출혈같은 것들도 있었었는데 그때의 후유증인진 몰라도 아직도 끼니마다 혈압약을 드신다는 것이고, 더 충격적인 것은 눈을 봤을 때 눈동자의 색깔도 빛을 바랬다는 점이다. 할머니의 눈빛은 탁하다. 여담이지만 노인의 생활을 이렇게 가까이서 관찰하는 순간은 내 생 통틀어 지금이 처음이다. 오늘은 그런 할머니의 생신이다. 때때로 자식농사 잘못지었다며 우리 엄마 아빠한테 미안하다고 말을 하기도 하지만 인생을 정리할 때가 되서까지 자식들 문제로 뚜렷한 거처도 없이 편하게 지내지 못하는 할머니의 인생이 조금은 슬프기도하다. 다만 우리 식구들은(할머니 포함) 오늘은 기쁜 날이기에 그러한 슬픔은 잠시 제쳐두기로 한 것 같다. 중화동에 사시는 엄마 친구분이 할머니 생신이라고 따뜻한 조끼를 하나 사오셨는데 너무 기뻐서 이런 즐거움에 죽기가 싫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노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죽어야지 죽어야지 하는 말은 엄마,아빠가 너네 대학가면 우린 시골가서 살테니 너네끼리 알아서 살아봐.라고 하는 말 만큼이나 진실되지 못하다. 사실 우리집에서 생활하기로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매번 죽겠네 어쩌네 하시던 할머니가 목욕을 하면서 콧노래를 하기도 하고, 베란다의 화초와 대화를 하기도 하고, 산책을 나가기도하고, 본인의 딸들과 통화를 하면서 큰소리로 웃고 떠들기도 한다는 점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참 흐뭇하다. 솔직히 내가 착한 놈이 덜된지라 개인적으로는 잘 챙겨드리지 못해서, (사실 아직은 깊은 정도 별로 없기에) 틱틱거려서 미안하기도 하다. 할머니는 옛날사람인지라 장남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보인다. 젊었을 때의 우리 아빠가 큰 아빠랑 차별받았던 그 사랑을 나와 내 동생한테도 똑같이 보여준다. 거의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할머니는 자꾸 나한테만 하나님의 뜻이 있고 크게 될 것이고 하는 둥의 말을 한다. 뭐 나야 좋지만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릴 때부터 그 소리를 옆에서 듣기만하는 내 동생의 입장은? 할머니는 왜 동생한테는 그런 좋은 말들을 자주 안해주는지 난 이해가 안된다. 사랑은 배제함을 배제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가치이다. 모든 '가치'는 저마다의 '가치'를 갖는다지만, 나와 할머니가 서로에게 주거니 받거니하는 사랑은 결코 옳다고만은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현실적으로) 짧게는 오늘 내일, 길게는 10년까지도 함께할 할머니이기에, 삶을 정리하기에도 바쁜 할머니한테 내가 진정한 사랑을 요구하기엔 결코 충분한 시간이 아님을 안다. 우주의 변화의 중심엔 내가 있다고 했던가, 그러니 이렇게 애매한 태도로 할머니보고  바보라고 욕할 바에 차라리 나는 발 한번 주물러드리고 머리에 빗질이라도 한번 더 해드릴란다.(내일부터;;)

2010.11.04 목(2010.11.05 00:08)
 이럴 줄 알았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그땐 이럴 줄 모르고 그랬으니 이렇게 된 것에 대해 할말은 없다. 하지만 그 때 그러지 않았었다면 이럴 일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후회가 되는게 언제나 후회라는 놈은 한발 늦게 온다더니 이번에도 그랬다 싶다. 사실 누군가는 마음의 짐을 덜게 되고 그 짐을 누군가가 대신 짊어져 그 무게가 배가 될 줄은 알고 이미 있었지만, 그걸 감당해야 하는게 하필 내가 됬다는게 조금 억울하다면 억울하다. 시스템의 역겨움에 분노할 필요는 없겠지만(소용도 없고) 배가 된 무게로 날 더욱 옭아매고 짓누르는 짐들로부터 해방될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제 점수는요

2010.10.16 토 02:09
 더위를 잊기에 가을만큼 충분히 시원한 계절이 있을까? 하지만, 그때의 나는 초등학교 3학년으로 한창 젖니가 흔들거리고 빠지곤 했는데 이를 빼기 위해선 횡단보도를 건너서 다니던 초등학교를 지나고 전철역에 근처까지 가야하는, 당시의 보폭과 시야로는 상당히 먼 거리를 오가며 치과를 다녀야 했었다. 나는 동생과 아파트 옆에 공터에서(그 공터에는 배드민턴 네트같이 쓸 수 있을만한 조형물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터라기보단 공원이라 하는게 맞다) 야구를 하거나, 축구를 차며 해가 질 때까지 놀다가 노을이 지거나 하늘이 연보라빛으로 물들거나 가로등이 하나 둘 밝아질 무렵 교회 유치원 수업이 끝나고 돌아오는 엄마를 만나 함깨 집으로 돌아 왔다. 집에와 목욕을 하고나선 EBS에서 하는 밥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를 보면서 철지난 달력 뒷면이나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리며 녹화해놨던 밥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를 보는 것이 나의 오후 일과였다. 당시에 IMF사태라 부르기도하는 국가적 금융 사태에 온 나라가 휘청거렸는데, 평범한 우리집도 휘청거렸다. 어쨌든 그 당시엔 이제 해가지고 아빠가 퇴근을 하면 새로운 일과가 주어졌다. 나와 동생과 엄마는 좋은 소식 있습니다 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전단지를 들고 까치마을 일대를 돌아다니며 아빠의 유리사업을 홍보했다. 싸고 좋은 맞춤 유리를 제작해주겠다는 내용의 글이었을 것이다. 전단으로 썼던 여분의 광고지들은 이면지가되어 또 나와 동생의 그림판이 되었고 나는 그 종이 위에 밥로스의 그림을 그립시다를 보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그림을 그립시다를 봤다. 전단을 돌리고 제작 의뢰가 들어오면 엄마는 우리에게 유리를 재러가자라며 줄자를 갖고 어린 우리 형제와 함께 여러 가정들을 돌며 식탁의 치수를 재겨나 책상의 치수를 재거나 했었다. 물론 우리집엔 이미 아빠의 강화 유리가 있어서 뜨거운 찌개를 먹거나 할때에도 식탁에 찌개 받침을 따로 놓을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나는 책상 유리의 모서리에 눈을 밀착해 자세히 들여다 보면서 여러 프리즘을 보기도 했었다. 그렇게 여러 가정을 돌아다니고 때론 아빠가 직접 가서 견적을 내보기도 하면서 유리를 만들어 팔았었다. 한손에 가방을 들고 있는 엄마의 반대편 손을 한손으로 잡고 다른 손으로는 동생의 어린 손을 잡고 해가 진 까만 밤에 아파트 단지를 누볐을 때를 이제와 돌이켜보면 실제로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 밤하늘의 별은 반짝였을 것만 같고 따뜻한 엄마 손을, 동생 손을 꼭 잡게 만들었던 차가운 바람은 요즘과 닮았을 것만 같다. 밤이 깊을 수록 별은 밝게 빛나고 날이 추워질 수록 사람의 체온이 그리워 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때 우린 내가 다니던 치과보다 먼 거리를 왔다갔다 하는건 다반사였기에 때때로는 귀찮음에 투정을 부리기도 햇었을 것이다. 그래도 절대 집에 자식을 혼자 두지 못하는 엄마의 끔찍한 자식 사랑 덕에 밤에 한바탕 산책을 하고 돌아온 어린 우리들은 그림을 그리면서 잠이 들거나 그림을 그립시다를 보다가 잠이 들거나 했을 것이다. 가을은 말그대로 가을秋이라는 그 이름만큼이나 무언가를 돌아보게追 만드는 계절인 것같다. 시간을 돌이킬 수 있다면 알고싶다. 그때의 우리 형제는 어떤 꿈을 그리며, 꾸며 잠이 들었으며, 또한 낮에는 직장에서 밤에는 직접 발로 뛰며 유리를 팔았던 젊은 부부는 잠든 어린 우리 형제를 보며 어떤 미래를 그렸고 꿈꾸었을까? 과거에 매이는 것은 지양하는 주의이지만 때로는 반동들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건 아마 좋았던 시절이 돌아오지 않는 까닭일 것이다. 매 순간 매 번 같을 수 없다는 것!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일회성이라는 비극적인 아우라를 갖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2010.10.13 수 00:15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울진이라는 멀고 낯선 곳에 있는 터널 현장에서 버린 입맛에도 지극히 사무적인 밥상에 앉아 감정이 매말라버린 밥을 지폐 몇장에 바꿔 먹으며 나에게 전화를 하는 당신에게 나는 낯뜨거워 고맙다고 말은 못하지만 온 맘 다해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선물은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물보다 선물한다는 행위에 더 많은 가치가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것은 마음을 담은 선물을 줘본 적이 있는 사람한테나 유효한 말일텐데 또한 내가 후자의 가치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을 담은 선물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인 듯하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온전히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이며 내 사소한 마음을 기쁘게 받아준다는 당신이 있다는 사실 또한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되는 반면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당신의 가르침을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오늘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실천해보려한다. 내가 당신께 건내는 사소한 위로의 문자들이 거울처럼 오히려 다친 내 맘을 따스히 보듬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당신으로 인해 내가 행복하기에 나로 인해 당신 또한 행복하길 믿고 싶은 밤이다.

2010.09.28 화 01:18
무엇인가에 익숙해지는 것만큼이나 자발적인 동인에서 비롯되는 변화는 그게 무엇을 위함이든 언제나 유쾌하다
문신처럼 습관화된 것들로부터의 유쾌한 탈피는 또다른 익숙함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결국 모순이기도 하지만 오래된 격언처럼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2010.09.15 수 23:35
사실 얼마전부터 돌맹이를 하나 기르게 되었지. 돌맹이랑은 첫경험인 나지만 어디서 굴러먹다온 돌인지도 모르겠고 허나 감입곡류천의 역동적인 향기도 나고 자유곡류천의 풍요로운 냄새도 나는게 바다의 짠내가 안나는 것말고는 나름 괜찮은 놈이었어. 사실 짠내가 난다는게 얼마나 인간적인 일인지 아소? 우리는 왜 구두쇠를 짠돌이라고 하는 것이며 영화 '쏠트'의 평점을 매길 때 0.5점(최대한 짜게)을 주는 것을 보면 그걸 알수잇는것같어. 어쩄든 그 돌맹이에서 수염이 나고(돌맹이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끼가 끼고, 황기하식으로 표현하자면 방구를 뀌고(후리고)) 있는 모습이 퍽 주인을 닮아있어서 사뭇 흐뭇했더랬지. 세어나오는 웃음을 감출 도리가 없어 알고보니 아랫도리도 없더라.그때는 내 뺨도 붉고 돌맹이도 붉고 청계천의 쇳물도 잘익은 감처럼 붉었다 그러드래. 어제는 그 돌이 곱등이를 보았느냐 묻길래 그렇소 책장옮기다 화석이 되버린 곱등이를 본적이 있소 했더니 그 곱등이의 고향이 어디요 묻고 아마 서울이 아니겠소 했더니 거기는 아무개씨의 고향이 아니냐 묻길래 그와 내 아비가 막역한 사이라 했더니 허허 웃으며 길게자란 수염을 민첩하게 빗물에 행구더이다. 양지바른 쓰레기통에 곱등이 화석을 매장하고 돌멩이한테 물을 안준게 생각나 단숨에 7층 계단을 올라 집에 들어와보니 돌멩이는 조약돌이 되어있고 조약돌은 아무 말이 없길래 공기놀이를 해버렸지. 꺾기를 하며 5알을 잡았을 때 그 조약돌 속에는 돌멩이도 있고 수염도 있고 백석도 있고 이상도 있고 아버지도 있었던 것같아서 '인셉션'에서 토템을 들고 다니듯이 나도 조약돌을 들고 다니려고 하는디, 이놈을 그냥 놀이터 돌맹이들이랑 어찌 구분할 수 있겠냔 말이야. 허는 수 없이 그 작은 조약돌에 수염을 그려버렸지. 더이상 진짜 수염을 나지 않지만, 동네 놀이터나 야산에 굴러다니는 돌이랑은 너는 다를거라며 하수구에 던져버렸지. 반드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오만떄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못만나면 어때? 넌 하수구를 빠져나와 강을 지나면 모래가 되어서라도 바다의 짠내를 품게 될 것을.

2010.08.23 월 15:29
과거의 잔인한 폭력의 고통과 슬픔이 서려있는 곳은
오늘도 그 과거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강요하는 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슬픔으로부터 기쁨을 가르칠, 혹은 배울 자세가 아직은 되지 않은 것일까.
우리는 폭력의 역사로부터 평화의 지혜를 배울 수는 없을까.
군대가기 싫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2010.08.20 금 01:58
이 동네는 노인도 많지만 (밤에 조금이라도 시원한 바람이 불면 전동 휠체어가 인도를 장악한다.) 우리 아빠 또래의 아저씨들도 많다. 오고가며 지나치는 한 주택의 담 저편에서 삼겹살 굽는 냄새와 소리가 나에게로 온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

2010.08.03 화 23:18
유행?을 빙자?핑계?하는 강요?는 역겹다,
그것이 문화적?인 예?로서 제도?도덕?관습? 무엇이든지 간에.
편견?선입견?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강요?하는 동인?이 내적?외적? 어디서 오든지 간에,
완전?한 궁극적?인 적극적?인 자유?를 혼돈?과 혼동?하는 것이,
이상주의자?인 나? 현실주의자?인 너? 누구이든지 간에.

2010.07.06 화 21:31
면목역 뒤로가면 재래시장이 있다. 삶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짧은 나의 생애에 비추어 볼 때, 사실 강남지역 및 몇몇 신도시를 제외하곤 어느 동네에나 재래시장이 있는 것같다. 모든 초중고의 학창시절을 분당과 강남 등의 지역에서 보낸 나를 비롯한 몇몇 세대들은 이러한 풍경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겐 익숙하다. 왜냐면, 15년 전 쯤ㅡ초등학교 입학 전 까지ㅡ살았던 암사동에도 재래시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호동과 암사동 사이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시장에 둘째 고모네 시계, 거울 가게가 있었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아직 뿌옇게나마 기억이 난다. 그 시장엔 고로케빵과 꽈베기도너츠 찹살도너츠등의 먹을거리도 있었고, 장난감을 파는 문방구도 있었다.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기도 했다. 현재까지 꾸었던 꿈 중에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꿈의 배경 또한 그 시장이다. 그 꿈 속에 나왔던 하늘에 달처럼 떠있는 열대어와 2층건물의 유리창을 통해 밖으로 내려오는 낙지들은 아직도 생각이 난다. 여담이지만 암사동에서 분당으로 이사간 후엔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꿈을 참 많이 꾸었다. 아무래도 꿈의 세계는 현실세계의 연장선인가보다. 다시 암사동으로 돌아와 한번은 밤늦도록 엄마,아빠가 집에 오지 않아 동생이 울어서 동생과 함께 엄마를 찾으러 거기까지 나갔던 적도 있다. 늦었다해봐야 해가 떨어진 7~8시쯤 됬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때 내 나이는 많아봐야 7살이었을 것을 참작한다면 좀 멋진 형이었다. 또한 그 시장에서 울트라맨 인형을 잃어버린 적도 있다. 관절이라곤 어깨와 목, 허리에만 있어서 그 부위만 회전이 가능한 플라스틱 인형이었는데 허리부분이 뿌러져서 항색 박스 테이프로 감고 다녔던 인형이었다. 거짓말 같지만 누군가의 장바구니에 걸려 그 장바구니를 따라 인파속으로 사라지는 광경을 똑똑히 봤었다. 울트라맨하면 기억나는 것이 머리에 뿔이 있는 울트라맨의 비디오 시리즈 중에 나오는 괴물인데, 그 괴물은 적들을, 즉, 시청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착한 세력으로 분류되는 이들을 콘크리트 토관으로 통과시키는 기술(?)이 있는 괴물이었다. 괴물에 의해 몸이 구겨져 토관으로 들어가 반대편으로 나오게되면 구겨졌던 만큼 몸이 작아지게 된다. 이를 여러번 반복하면 거대한 군대나 그런 것들도 다 그 괴물의 코딱지만 해진다. 어쨋든 재래시장엔 없는거 빼고 다있다는 조영남의 말이 생각 나면서도 한남동의 대저택에 사는 그는 누구인가 싶다. 현재로 돌아와 이젠 면목동에서, 방금 저녁에 먹을 것들을 사려고 시장에 다녀왔는데, 내가 미취학 아동이었을 때 봤던 꽈배기 도넛과 고로케, 노상에서 파는 해산물과 반찬거리들은 그때 그대로 있었다. 호떡도 있었고 누에도 있었고, 예쁘고 착하고 귀엽기까지한 여고생'들'도 있었다. 그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난 손바닥 만큼의 쇠고기에 더불어 양상추 , 샐러리, 토마토, 자몽을 사와서 적절히 먹었다. 지금 하고 있는 덴마크 다이어트를 2년 전 동국대에서 공부를 할 때 1학기 중간 쯤에 해본 적이 있었다. 그땐 학기 중에 보온병에 커피를 가지고 다녔고, 아침에 삶은 계란의 껍질을 까서 가방에 넣어 가지고다니며 그렇게 배고픈 체로 통학을 했었다. 지금도 식단은 똑같지만 집에서 배고파 뒹구는 모양은 돈까스먹는 친구 앞에서 샐러드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드래싱없는 풀들을 입에다 쑤셔 넣거나, 한강에서 족발을 앞에 놓고 물만 마셨던 그때보단 그나마 양반적이고 귀족적이라고 생각한다. 참고하자면 그 식이요법은 2주동안 진행되는 것인데, 1주의 식단 싸이클을 2번 반복하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1주의 싸이클을 한번 돌리고 2주 째에 접어들면 평소에는 전혀 그럴 일이 없던 일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구체적인 음식의 메뉴나 재료가 생각나는 것이다. 예컨데, 2년전 다이어트를 할 때엔 갑자기 '짱구과자가 먹고싶다'라거나 '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다.' 따위의 욕구가 일어났던 신비한 체험(?)을 들 수 있다. 물론 프라이드 치킨은 세계 최고의 요리이기 때문에, 적절한 예가 아님을 안다. 도대체 최초의 그 누가 어떤 의도로 닭고기에 튀김옷을 입히고, 그것도 모잘라 기름에 튀겨버릴 생각까지 했단 말인가? 각설하고 음식 보기를 돌같이 하고, 샤워할 때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몸의 실루엣에 만족하기를 혐오한다면 이 다이어트는 단기간에 큰 성과를 낼 가능성을 보장해준다. 더욱 경이로운 사실은ㅡ모든 다이어트가 그러하겠지만ㅡ이 혹독함의 수혜자는 오직 나뿐만이 아니고 그 대가가 내 주변에 있는 이들에게 까지 파급된다는 점이다.(최대 수혜자는 물론 나 스스로이겠지만 말이다.) 나는 이를 첨단 과학과 인간의 본능적 욕구의 만남이라 정의하겠다. 다시 말해, 현대 과학이 지향하는 바의 현신으로서의 과학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동의한다면 나는 수레의 두 바퀴로서 감성과 이성의 균형이 잘 맞는ㅡ오늘날까지 문화전반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근대의 잔제인 이성,물질,과학 만능주의의 병폐를 극복한 구현체로서ㅡ 상당히 '현대 과학적인 남자'가 되는 것이다.

2010.06.20 일 01:51
세상의 모든 가치들은 그 대립항들을 가지며, 그 양자 간은 서로에 대해 배타적이다. 상승은 추락에 반발하며, 빛은 어둠에 대립한다. 또한 오줌과 맥주, 감자와 고구마도 서로 대립한다. 하지만 사랑은 그러한 배제함들를 배제한다. 배제를 배제하는 위대한 포용은 오직 사랑안에서만 가능한 것이며, 이로써 우리는 사랑이 지상 최대의 가치임을 확인하게 된다.

2010.05.23 일 03:27
시원한 밤이다. 지랄같이 길었던 겨울 동안 오늘 같은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는가. 지랄같이 찌는듯한 더위는 아직 아니지만, 어느새 여름이 가까웠음을 적당한 선에서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름 바쁘기도 했고, 날씨도 지랄같아서 봄이 있었는가도 긴가민가했지만, 돌이켜보면 벚꽃도 피고지고했고, 딸기도 지랄같이 자주 먹었으니 분명히 봄이 있었긴 했나보다. 사실 학교를 다니다보면, 어느새 잔디도 푸릇푸릇하고 꽃가루도 날라다니고 캠퍼스 커플, 일명 씨씨도 등장하는 등 새 생명이 태어나는 지랄과 소란에 온 동네가 생기문란하고 난리도 아니다. 작년에 입시하는 동안 발바닥에 지랄병이 도져서, 사실 티눈이 생겨서, 아직도 고생중이라 일찍이 슬리퍼를 신지 못했지만, 요즘엔 운동화를 신기만하면 땀이 차고 지랄이라서 슬리퍼를 꺼내게 됬다. 참고로 티눈에 슬리퍼는 지랄같은 조합이다. 왜냐, 남들에게 내 티눈을 보여줄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과제는 또 어찌나 지랄같이 많은지 이런 지랄같은 티눈의 뿌리를 뽑을 시간을 주질 않는다. 병원에 한 번 가면 좋을텐데 그럴 시간은 사실 있지만, 심적인 여유가 없다. 참 지랄같은 상황이지, 만약 티눈이 아니라 맹장이었다고 쳐보자. 난 과제를 한답시고 배를 움켜쥐고 방바닥을 뒹굴며 과제를 한다기보단 지랄을 떨고 있었을 것이다. 근데 사실 고질적 지랄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뭔가 해내겠다고, 엄밀히 말하자면 해야된다고 폼잡는 지금과 크게 다른게 뭔가? 해내겠다는 것과 해야된다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참 많이 다른 말인 것같다. 참 시원한 밤이다. 마치 임기를 마친(의도하지 않은 라임 개그) 노간지, 노지랄, 노무현이 봉하마을로 가서 아 기분좋다!라고 소리친, 그 해방감이 느껴지는 듯한 시원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혹은 그렇기 때문에, 어쩃든, 병신같은 현정부의 지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작년 오늘 나는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치르고 집에 오는 길에 그의 서거 소식을 듣고 장염에 걸려서 며칠동안 지랄같은 맹맹한 죽에 간장을 찍어 먹으며, 먹자마자 설사똥을 쌌던 기억이 있다. 장염에 걸려본 사람은 알리라, 먹자마자 싸는, 나아가 먹으면서 싸는 고통을. 어쩃든 인수위때부터 시작해서 임기 내내 그가 하고자 했던 검찰개혁은 꼴통들과 병신들의 지랄로 실패했고, 그 실패의 댓가가 나중엔 결과적으로 그가 몸을 던지게 만들었지만, 오늘은 그날 밤과 다른, 잠을 자기도 아까울 정도의 시원한 밤이 왔다. 비가 그치면 또 더위가 찾아 올 것이다. 작년의 오늘처럼 그 더위의 끝엔 비가 있을 것이다. 거의 웬종일 비가 와서 수사가 잘 안됬었지. 더위의 끝에 비가 오듯이, 이 외로움의 끝에 비(정지훈)가 있기를 원한다면 나는 게이겠지. 다행히 난 아직 게이가 아니니, 당신이 누구든 남자라면 잠시 안심해도 좋다. 이 시원한 밤을 함께 나눌, 내 몸무게나 체지방비율을 상관안하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싶다. 사실 나같은 돼지들도 죽어서라도 누군가에게 돈까스가 되고자 하는 꿈은 있다. 최소한 꿈은 꿀 수 있는 자유가 있는 세상에, 꿈을 실현시킬 의지조차 없는 가난한 나는 한낱 고기덩이에 불과할 것이다. 나같은 돼지는 오늘도 너에게 돈까스이고 싶다며 두꺼운 튀김옷을 입고 뜨거운 끓는 기름에 뛰어든다. 오늘밤은 나도 네 생각하고 너도 내 생각하는 시원한 밤이다.

2010.03.11 목 23:11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그 잎을 모두 떨어뜨리고 나목이 된다. 그 때엔 나무에게 그늘이나 먹이를 찾으러 놀러오던 짐승들도 모두 자취를 감춘다. 시련이나 고독은 모든 관계로부터 자신을 독립시키고 스스로를 직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겨울이 오고 잎이 지고나서야 잎 속에 감춰져 있던 그 잎의 근원이 되는 줄기를 볼 수 있듯이 말이다. 한가지 더 경이로운 사실은, 나무와 우리에겐 뿌리가 있기 때문에 더 성장 할 수 있고 나아가 새로운 싹도 틔울 수가 있다는 것이다. 씹덕후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2010.03.08 월 23:45
 페이트 쿠션을 껴안고 뒹굴며 행복해하는 씹덕후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씹덕후는 나에게 '인간으로서 우리는 과연 어느 범주의 대상까지를 사랑할 수 있는가? 그 대상의 한계를 정하고, 그 경계 너머의 대상은 우리가 사랑할 수 없는가? 아니면, 해선 안되는가?' 하는 문제를  던져주었다. 어쩌면 우리는 사회속의 제도권이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심중에 세뇌시킨 대상만을 선택적으로 사랑하게 길들여졌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선택만이 시대나 사회가 사랑을 통해 개인에게 요구하는 목표를 (단순한 예로는 생산과 소비) 성취하는데 더 효율적이고 유용하기 때문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런면에서 사랑의 대상을 이성으로 부터 확장시킨 홍석천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이성애자보다 더 순수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동성애를 더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이성적인 인간이 됨을 지상 최대의 행복으로 생각했던 그리스 사람(남성)들이 말하는 미인은 12~16세의 미소년이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에게 이성간의 사랑은 지극히 동물적이고 쾌락만을 위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모든 쾌락이 배제된 동성간의 사랑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의 본질에 더욱 접근한 방법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여기서 더욱 나아가 가상의 인물이나 쿠션등을 사랑의 대상으로서 개척한 씹덕후는 홍석천이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욱 순수한 영혼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씹덕후 씨발새끼

2010.02.24 수 22:14
우리는 우리의 앞에 물컵이 놓여있으면 그 안에 있는 물을 마신다.

2010.02.04 목 17:40
 운명보다 강한 힘은, 그 운명조차 거스를 수 있다고 믿는 신념이라고 한다. 눈동자의 색을 바꿀 순 없지만, 눈빛은 바꿀 수 있다는 말이 있다.

2010.01.16 토 10:50
 우리는 모두 중1때부터 국사를 배워왔다. 시험기간에 공부할 폼이라도 잡아본 사람이라면 적어도 6년동안은 선사시대에 대해 공부를 했을 것이다. 그 방면에서 우리는 선사시대에 대해 소논문쯤은 우습게 써내려 갈 수 있을 것이다. 여긴 교과서 밖의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모두 알다시피 구석기 원시인들의 가장 대표적인 사냥탬은 슴베찌르개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사냥을 위해 제작되지만은 않았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세게에서 출토되는 슴베찌르개의 크기는 정말 다양하다고 한다. 나아가 사냥에 적합하지 않은 크기의 슴베찌르개도 심심치 않게 출토된다고 한다. 사람보다 조금 작은, 쓰임세에 비해 터무니없이 거대한 슴베찌르개가 왕왕 발견되는데, 이를 권위있는 학자들은 남성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데 쓰였다고 해석한다. '나는 이만큼 거대하고 정교한 슴베찌르개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매력적인 남자이다. 나와 결혼하면 나의 슴베찌르개 기술로 가정을 이끌어 가겠다. 더불어 여성들을 위해 슴가찌르개도 개발할 의향이 있다.' 뭐 대충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도구가 아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현대의 우리의 삶과 과거의 그들의 삶은 전혀 다를 것이 없는 삶의 방식을 갖고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작품으로서 슴베찌르개가 갖는 복잡성과 상징적 의사소통 능력을 발견한다면 분명히 그렇다고 할 수 있다. 현대의 우리와 슴베찌르개를 만들었던 그들 사이엔 수천년 이상의 시간이 존재한다. 그 동안 예술은 인간의 가장 고귀한 기획 중 하나로 발전해오고 있었음은 확실하다. 피카소가 라코스 동굴 벽화를 보고 '우리는 아무것도 발견한 게 없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에서 아닐까?

2010.01.12 화 21:28
버텨나가는 것보단 성장해나가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는 것 같아

2010.01.02 토 00:54
 우리가 이 세계에서 경험하는 모든 인식은 충돌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빛이 대상에 부딫혀 반사되면 그 빛은 다시 우리 망막에 부딫히고 그 부딫힌 대상의 정보를 시신경이 뇌로 전달한다. 정리하자면 계속된 충돌의 결과 우리는 시각적으로 대상을 인식하게 된다고 할 수 있겠다. 더이상 말하지 않아도 나머지 감각들도 모두 마찮가지일 것을 제발 좀 알아차리길 바란다. 이렇게 충돌이 모든 인식의 원인임은 태초의 우주의 기원과도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눈치가 있다면 태초에 충돌이 있었고 거기서 이 우주가 탄생했다는 빅뱅이론은 현대에 가장 권위있고 보편적인 학설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을 떠올려야 넌 정상인인 것이다. 이쯤되면 충돌이란 것이 얼마나 원초적인 현상인지 감이 올텐데, 충돌이 없다면 존재 자체가 존재할 수 없고, 그 것에 대한 인식도 부재할 수 밖에 없음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충돌에 아주 미시적인 관점으로 접근을 하다보면 모순에 빠진다. 물질을 이루는 기본단위인 원자는 공간의 경계를 갖지 않는데(원자가 공간의 경계를 갖지 않는다면 끈이론에서의 끈도 마찮가지겠지), 그 결과 원자간의 충돌이란 성립할 수 없게되고, 모든 물리적인 '충돌'이란 현상은 딜레마에 빠진다. 다시 묻겠다. 태초부터 충돌이 있어왔던가? 아직도 모든 인연의 연원을 충돌에서 찾는 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나는 너와의 인연이 단지 어떠한 충돌에 의한 결과가 아닌 우주를 지배하는 운명의 이끔이길 바란다.


2009.12.30 수 23:31
 스스로 뼈속깊은 부분까지 한국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칼국수와 매운탕을 즐겨먹진 못해도 아주 좋아한다. 필자도 입맛을 다시며 글을 쓴다는 것을 감안해 볼 때, 본인도 한국인이 맞긴 맞나보다 할 수 있겠다. 어쨌든 두 음식의 공통점은 미더덕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미더덕은 바다의 더덕이라 불리울 만큼의 많은 영양소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식사가 끝날 때까지 뜨거운 국물을 몸 안에 머금을 수 있다는 외유내강, 구밀복검의 미덕을 미더덕은 갖고 있다. 이러한 미더덕을 무심코 씹었다간 가혹하게 입천장을 데일 것이라고 조선의 권위있는 의관이었던 허준선생의 동의보감엔 이미 소개되어 있었다. 덧붙히자면 동의보감에서는 이러한 미더덕으로부터 비롯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구더덕을 넣기를 권하고 있다. (구더덕은 오늘날 구더기의 한자식 표기이다.) 동의보감엔 구더덕을 넣었을 경우엔 미더덕을 넣었을 때의 시원한 국물맛을 똑같이 느낄 수 있으며, 뜨거운 물 외의 효용성을 갖지못하는 미더덕과 대조적으로 구더덕은 고단백, 저칼로리의 음식으로서 성장기 어린이나, 변비로 고생 중인 사람, 또한 다이어트 등의 미용식단으로도 손색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임란 이후 도입된 대표적인 구황작물로는 고구마 정도를 떠올리긴 쉽지만 사실 고구마는 밭이 있어 경작할 수 있는 사족 지주들을 위한 작물이었고, 실제로 당시 민중의 주린 위 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던 것은 다름아닌 구더덕이었다고 세계기록유산인 조선왕조신록과 승정원일기의 광해군파트에도 기록되어 있다. 다시 말해 구더덕은 조선 중기 양난으로 피폐해졌던 민중의 삶을 개선시키고자 했던 끊임없는 연구로부터 발견된 선조들의 지혜와 상생의 미덕이 집약된 식재료라고 현대의 우리는 새롭게 정의할 수 있다.

2009.12.26 토(2009.12.27 02:41)
 그 시작의 정확한 시점은 언제인지 잘 모르지만, 인간은 값싸고 맛좋고 양도 많은 그런 음식들을 항상 찾아오고 있다. 인간이 음식물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단계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방금 언급했듯이 값, 맛, 양이 그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인데, 그 중에서도 양이 으뜸이라고 어느 권위있는 소믈리에가 밝힌 바 있다. 양은 우리에게 가장 크고 고상한 만족감을 주며, 따뜻한 옷감, 그리고 때론 불면증을 치료하는 약으로 쓰이기도 한다. 오늘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눈을감고 양을 헤아릴 것을 믿는다.

2009.12.24 목 00:49
사람이라면 반드시 자신과 비슷한 것에 끌리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끼리 정당을 형성하기도 하고, 비슷한 신앙체계를 가진 사람들끼리 종교를 형성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술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술을 마시러 가기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끼리 놀기도 하는 등 자신과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어떤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다시말해 어떤 공동체는 공통점을 가진 개개인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대상을 묶는 공통점의 기준을 점차 확대했을 경우, 우리는 인간이라는 점, 생명체라는 점, 똥을 싼다는 점 등등 이 우주를 커다란 하나의 집합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거대한 체계속에서 우리 모두는 닮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겠고 나아가 아와 비아의 경계를 허무는, 소위 제법무아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오늘 내가 흘린 한방울의 오줌이 지구 반대편의 누군가에게 단비가 되어 내릴지도 모른다고 이 논리의 예를 들 수 있겠다. 사실 맥주와 오줌의 차이는 단지 온도일 뿐이듯이(맥주는 차갑고 오줌은 따뜻하고), 우리는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 서로가 양보를 한다면 물과 기름도 오줌과 맥주처럼 섞이게 될 것을 믿는다. 실제로 맥주를 마시면 마신 맥주의 양과 똑같은 양의 오줌을 싼다는 세계보건기구의 조사 결과가 있다. 마찬가지로 나의 냉정을 열정으로 바꿀 수 있게 만드는 에너지를 네가 지니고 있다는 것은 기적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그 것이 우연이라고 단정짓는 행위는 논라적 비약이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임을 믿는다.

2009.12.19 토(2009.12.20 01:01)
 사람이라면 반드시 반대에 끌리는게 자연의 섭리이다. 대표적으로 남녀 간이 그렇고 연상연하, 부모와 자식, 선배와 후배, 똥과 오줌, 남한과 북한, 삭발과 수염 등 하나하나 나열하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반대에 끌리는 이유에 어떤 유산균이 작용하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반대라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이라는 것을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보면 우리는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반대에 지나치게 익숙해져있는게 아닐까 싶다. 한번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매일 보는 스스로의 모습도 실제와는 반대된 모습이다. 스스로를 마주할 수 있는 곳은 거울 앞 뿐이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물리적이긴 하지만). 여기서 물리적 현상을 넘어 한단계 확장해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오히려 타인의 시선이야 말로 나의 진짜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어야 넌 정상인이다. 남이 널 몰라준다고 징징대기 전에 한번쯤 거울 밖의 자신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변기는 하얗고 매끈하지만 좁고, 사람이 들어가 생활하기엔 찝찝하지 않던가.

2009.12.16 수(2009.12.17 00:00)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떤 사람들은 터무니없는 비약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부모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명제를 들 수 있다. 이 명제를 가지고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다면 보편적인 사람들은 그를 변비나 치질로 고생하거나 고생했던 적이 있음이 명명백백하다고 판단한다. 심지어는 혈변을 보고싶냐며 삿대질을 하거나 딜x를 들고 찌를 기세로 위협하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용변 후 변기의 물을 당연하게 내리듯- 이 또한 사실관계를 가지고 가치판단을 너무 쉽게 내려버리는 비약이 있음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누군가의 자녀라는 사실은 그 누군가에게 반드시 효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의 당위성을 뒷받침해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판단의 연원은 사실관계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결국 윤리적 회의주의에 빠지게 되고 받은만큼만 베풀고 먹은만큼 싸기만 하는 제로섬인간으로 귀착될 뿐이다. 위에서 함께 살펴봤듯이 이성만으로써 인간의 삶은 설명하기 매우 벅차기 때문에 선조들은 변소를 거시기, 뒷간, 토일렛 혹은 해우소라고 부르기도 했다. 변기에 앉아서마저 핸드폰을 놓지 못하는, 생활의 모든 면을 둘러싼 매체의 홍수에 길들여진 우리 세대들은, 시대를 관통했던 선조들의 눈을 닮을 순 없을까? 오늘은 두꺼운 화장을 지워낸 그의 얼굴이 보고 싶다.

2009.12.15 화(2009.12.16 00:28)
밤바다는 초현실적인 매력이 있는 공간이다.
낮에 바다를 보면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시각적, 심리적 안정감을 얻거나 점심엔 뭐먹을까 이런 고민을 하게된다.반면에 밤바다는 수평선이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안정감보다는 압도감을 준다. 심지어 경외감을 느끼며 밤바다를 향해 큰절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있겟지. 다시, 해안선부터 시선을 점점 멀리하며 수평선을 찾다보면 끝이 없는 무한한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쉽게말해 하늘과 바다의 경계선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것은 온통 검정뿐인 공간, 바닥면과 천정의 경계가 없는 그 곳은 (물론 착각이지만 우리의 무의식적인 인식 속에서 만큼은) 3차원적인 공간이 아니게 된다. 내가 하늘을 보는지 바다를 보는지 오락가락하다가 결국은 오락부장이나 가락얼짱을 찾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술취한 사람들은 발목까지 밖에 안오는 밤바다에서 익사하기도 하고,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헌팅이 이루어지기도 한다고 한다. (예쁘게 말하자면 안될 사랑도 이루어지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거대한 자연은 인간을 압도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적절한 예인지는 모르겠지만 높은 빌딩 옥상에 올라가 난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느새 몸이 앞으로 쏠리는 기분이 들어 주저앉곤 한 기억이 있다. 반대로 미세한 자연 또한 인간을 압도하기도 한다.그 중 가장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미세한 세계는 유산균의 세계이다. 유산균은 밤바다든 낮바다든 김바다든 상관없이 장속에서 소화를 돕는다. 환경에 쉽게 휘둘리는 우리와 대조적인 그들의 단순한 모습에서 자신이 있을 곳과 그 곳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선균의 목소리를 갖진 못해도 유산균같은 남자는 되고 싶다.

2009.12.12 토(2009.12.13 02:27)
 여기엔 보편적인 인간들은 하루에 도마슈노를 2개 이상 먹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게다가 속담이나 관형어처럼 사용되곤 했던, 생활 순간순간마다 알게모르게 유산균을 더 섭취한다는 이야기가 현대에 이르러 사실로서의 옷을 입으로써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유일하게 겪어오고 있는 변비라는 질병은 종말을 직면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권위있는 한 연구에서는 아침에 쾌변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하루종일 잔변감으로부터 초래되는 스트레스와 디스크 및 심장질환 등의 성인병의 위험에 크게 노출되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더 마이크로한 세계에 대한 인간의 호기심과 그 것을 정복하고자 하는 학계의 활발한 진보에 힘입어 우리는 장까지 살아간 유산균과 소화액의 메커니즘에 대해 어느정도 이해하였고,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그들을 캡슐에 태워 장까지 살려 보내는 기술까지 개발하였다.  변비감을 넘어 잔변감, 잔변감을 넘어 쾌변감까지. 쾌변감의 너머엔 어떤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과학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면서 또한 나름의 대답을 제시하기도 한다. 배설과 과학, 그 둘을 아우르는 인간의 존재 의미는 심장하다.

2009.12.07 월 23:39
그런 적이 있었었다.
치킨을 많이먹고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방구를 꼈을때 치킨냄새가 나서 웃었던 적이 있었었다.
그렇다면 나는 치킨맛 방구를 뀐 것인가,
방구맛 치킨을 먹은 것인가?
그날 밤, 내가 꿈속을 헤매고 뒤척이며 방구를 뀔 때
사람들은 새벽이 오기도 전에 외로운 수탉 소리를 들었을 거외다.
새벽은 방구소리와 함께 오는가보다.

2009.10.07 수 01:52
스티비원더는 인큐베이터에 있을 때부터 장님이다.
그런 그가 '당신은 나의 햇빛입니다' 라는 노래를 하는 것은 정말 근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원더풀한 일이다.

2009.07.24 금 12:01
잠에서 깬다고 꿈조차 사라질까

2009.07.15 수 01:07
향기가 있어 가봤더니 거기엔 꽃이 있었다.

2009.07.07 화 03:45
사람과 사람이 모여 풍경을 이룬다고 한다.
여기엔 구겨지고 빛이 바랠지라도 여전히 아름다울 풍경이 있다.

2009.06.27 토 01:34
내 얼굴을 지구에 비유하자면. 모공은 아라비아의 유전이다.
석유자원은 편재성을 띈다.
이는 목욕을 안해도 얼굴에만ㅡ특히, 머리와 이마와 코ㅡ기름이 번들거림과 일맥상통한다.
우리는 비옥한 땅을 흔히 기름지다고 표현한다.
내 얼굴은 비옥한가?
시비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삼국시대에는 전국에 휴경지가 넘쳐났다고 한다. 한번 농사를 지으면 땅의 영양분을 보충하기 위해 땅을 쉬게 했다고 한다.
나도 세안하기를 쉬면 얼굴이 기름져질까?
기름져짐은 물론이고, 추수 때 거울을 보면 속이 꽉찬 빨간 열매가 맺어져 있을 것도 안다.
그러니 나에게 약간의 시간과 마지막의 기회를 달라.

2009.06.19 금 03:57
 꼭 내 나이때 파푸아뉴기니를 갔다가 길을 잃어버린적이 있다고 얘기했던 사람은 내 건너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 여객선 항해사였던 아빠가 바다가 아닌 내 건너방에서 자고있게 만드는 이유는 이 빌라 202호에 다 들어있다. 고등학생때 자취를하며 혼자힘으로 공부를 하던 아빠는 기관지가 약한 탓에 폐렴으로 학교를 쉬어야해서 고등학교를 4년다녔다고 한다. 나도 잔병치례가 많은데 그 중에 태반은 기관지와 관련이 있다. 배를 오래탔던 까닭에 밤하늘을 보고 별자리를 찾을 수 있고, 그걸통해 항해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대충 알 수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아빠는 새벽6시에 출근하고 오후7시에 들어와 쇼파에 몸을 눕히기 바쁘다. 내 기억력이 아주 좋았더라면 이모습을 22년동안 봐왔음이 틀림없을 것이다. 나는 아빠를 하늘이 보이지 않는 터널공사현장으로 보내고, 아빠가 별을 보는 것을 막아오고 있다. 낭만을 빼앗았고 22년이라는 세월도 함께 빼앗아버렸다. 나의 어린 기억속에 우리는 암사동 반지하부터 함께 있었다. 부천이나 자양동에서 살았던 사실은 사진속에만 존재한다. 어쨌든 내가 세상에 태어나 아빠와 함께하지 않은 적이 없다는건 사실이다. 암사동에서 암사동으로, 반지하에서 반지하로 많이 옮겨다녔다. 함께 교회에 가면 주보에 그림을 그려줬다. 그렇게 내가 8살되던해 우리는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 9층이었다. 까마득히 높았고 아빠는 키작은 날 베란다밖으로 들어서 세상을 내려다보게 해주었다. 내가 어릴때는 아빠의 동창회에 함께 자주갔다. 억지로 끌려가기도 했지만 돼지갈비를 먹었기 때문에 좋았다. 나도 나중에 가정을 꾸리면 친구들과 만날때 삼겹살을 먹거나 돼지갈비를 먹으러 갈꺼다. 아빠는 그의 또래들보다 잘생겼고 키도 크다. 정보석이라는 텔런트가 있는데 닮았다고 생각했다. 요즘 얼핏얼핏 설경구가 보이는듯 했으나, 지금 주름이 우리 할머니랑 더 닮아있고 나보다 키도작아서 괜히 미안하다. 내가 11살되던해 교통사고가 크게나서 광현이와 나는 입원을 하게됬다. 엄마는 항상 나와 함께 있었는데 아빠는 나와 함께하지 않은 날이 더 많았다. 그 슬픈 이유를 지금 나는 안다. 그러기에 내 눈썹에 흉터보다 아빠 팔뚝에 낙서처럼 있는 작은흉터들이 더 강하게 심장을 후빈다. 그렇게 어느날 서울로 이사를 왔다. 나는 꼴에 사춘기였는지 `나는 하나의 인격체이지, 아빠엄마의 분신이 아니니, 내 결정을 존중해주세요.`라면서 자주 눈물을 보였었다. 요즘엔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유로 가끔 눈물을 보인다. 키가 더크고 덩치가 더 커도 아빠보다 강해려면 30년은 더 살아봐야 될것같다. 아빠가 오래 살아서 아빠보다 더 강해진 나를 봤으면 한다고 소망한다. 오늘 반지하 월세방을 오가며 그가 젊음과 바꿨던 9층 아파트는 그 아파트 근처에 서울대병원의사가 사갔다. 내가 살때 베란다에서 보면 한창 공사중이었는데 그게 10년전일이다. 그 집에는 돈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을 나도 안다. 막상 내놓고도 팔리지않기를 바랬으리라 짐작한다. 이런저런 합리적인 명분을 대면서 그 집을 팔았지만, 찜질팩을 하면서 해피투게더를 보는 그에게 난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내가 축구좋아했을땐 축구도 같이해주고 그랬었는데 지금 그의 다리는 너무 가늘고 하얗다. 다른 사람들처럼 테니스나 골프를 칠 기운도 없다. 가끔은 술을 드시고 온다. 얼굴이 아주 빨게서 절대 그 사실을 숨길수가 없다. 또 술마신날은 깊이 잠을 못주무시기 때문에 엄마가 옆에서 엄마가 잠들때까지 잠자는 아빠 손을 마사지해준다. 나도 술을 못마시는데, 그래서 안마시는데,나도 어쩌다 마셨다간 집오면 속이 울렁거리고 심장이 뛰어서 잠을 잘 못잔다. 엄마같은 여자가 내 아내가 됬으면 좋겠다. 아빠는 책보는걸 좋아한다. 집에있는 책은 다 아빠가 젊을때부터 애장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종이가 누렇고 좋은냄세가 나는 책도 있다. 그러나 요즘 아빠는 책을보려면 돋보기를 써야하고, 책을보다간 잠이 든다. 아빠는 음악듣는 것도 좋아한다. 새벽부터 비오는 날엔 직업의 특성상 출근을 안하시고 꼭 오디오로 어떤 여가수 노래를 듣는데 요즘 햇빛은 너무 쩅쨍하기만 하다. 아들은 선크림을 사드리지만 선크림을 바르는 아빠의 모습을 상상하면 그건 더욱 나를 먹먹하게 만든다. 아빠는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특히 국수하는 것을 좋아한다. 더욱이 자주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국수는 더 특별하다. 만화에서나 봤던 반숙한 계란프라이를 처음으로 실제 먹어본것도 아빠가 해줬던 것이었다. 노른자는 터지면 지저분해지기 때문에 후루룩 먹어야 한다. 엄마는 계란프라이를 꼭한번 뒤집어서 다 익혀준다. 고기를 구워도 아빠는 핏기가 좀 있게 구워주고 엄마는 앞뒤잘익혀서 주신다. 고기이기 때문에 난 둘다 좋다. 아빠는 애기들이랑 노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어릴때 명절날 친척이 모이면 나보다 더어린 동생들한테 맨날 장난을 걸었다. 그러나 아빠는 늙고 나와 내 동생들은 다 커버렸다. 내가 빨리 결혼하고 싶은 이유중 하나이다. 나도 애기들을 좋아하지만. 근데 군대도 아직 안갔다왔고 결혼도 제일 늦게할 것 같아서 고민이다. 어쨌든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것에 인생을 거는 사람은 참 훌륭하고 존경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이땅의 모든 엄마,아빠들은 어떤 케릭터이건 간에 적어도 5월8일에 카네이션을 달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겐 누구나 자기 사연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딱히 특별한 사람은 없다. 어쩌면, 모두가 특별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아빠의 평범한 인생이 나에게 위대한 이유이다. 나는 아빠와 많이 닮았고 광현이는 엄마랑 많이 닮았다. 때문에 어릴때 나들이를 나가면 난 꼭 아빠랑 붙어있었고 광현이는 엄마랑 붙어 있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있어도 엄마한테만 야단을 맞았고 그럴때만 아빠를 이상하게 찾을 수 없었다. 스타크레프트를 하다가 아빠한테 따귀를 맞은 적이 있다. 한대한대 맞을때마다 정신이 번쩍번쩍 들었다. 내가 한심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게임을 하느라 퇴근한 아빠를 쌩깠던 것이다. 그 후론 엄마,아빠한테 인사를 잘하게됬다. 개념없는 애들은 맞으면 정신을 차린다. 난 귓속에 털이 많아서 귓속에 먼지가 항상 많다. 아빠는 살살 긁어내면서 귀를 잘 파주신다. 목욕탕가서 때를 밀어줄때도 안아프게 잘 밀어주신다. 아빠는 대인배다. 내가 빨리 자라서, 아빠에게 내가 이뤄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고, 세월 속에서 아빠가 잃어버렸던 별들을 다시 찾아드리고 싶다.

2009.06.16 화 16:14
그리움은 만날 수 없는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만날 수 있는 그리움이다
그래서, 그리움은 깊을수록 슬픈거구, 기다림은 길수록 행복한거다

2009.06.14 일 02:37
이불에 붙은 먼지였으면 좋겠다.
퍽치면 풀풀 날리다가도 어느새 떨어지는.
콧털에 엉킨 코딱지였으면 좋겠다.
끈적거려도 후벼파면 깨끗히 사라지는.
코에 있는 모공속에 살고있는 피지는 아니였으면 좋겠다.
짜고 짜고 아무리 짜도 그건 시원하지가 않잖아.
머릿속에 비듬은 아니였으면 좋겠다.
피가 나도록 박박 긁어도 끝없이 계속 떨어지는.

2008.12.31 수 19:56
시간이 흐르고 계절이 바뀐다
지구는 태양을 돌고 달은 지구를 돈다
향기는 추억의 등에 업혀 밀물이 되어 오고
추억은 시간의 등에 업혀 썰물이 되어 간다
하지만 북극성은 제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렇기 때문에
향기는 닿지 못한 추억들을 등에 업고 시간을 초월하고
우연의 봄바람을 타고, 혹은 운명의 이끌림을 따라
또다른 밀물이 되어 나에게로 흘러오고
다시 스며들 것을 믿는다


2008.12.13 토 16:20
안 모씨의 아들 모 광휘군은 평소에 깨끗한 피부에 대한 강박관념이 있어 여드름이 눈에 띄면 밤낮도 상관없고 사정도없이 뿌리뽑습니다. 결국 흉터가 생겨버렸네요.
안 모씨의 아들 모 광휘군은 수염에 대한 애착이 강해 더 많은 수염을 기르고 싶어서 매일 면도를 합니다. 수염을 위해 수염을 자르는 모습이란.. 마치 주인을 구하기 위해 불길에 뛰어든 한마리의 개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 모씨의 아들 모 광휘군은 내일을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한다는 소릴 셀 수도 없이 듣습니다. 오늘이가고 내일이 오면 또 내일을 위해서만 살아야 겠죠. 하루하루가 갈수록 내일은 24시간만큼씩 더 멀어집니다. 언젠가라는 날이 그의 달력에 과연 있기나 했던걸까하곤 저에게 자주 물어본답니다. 
안 모씨의 아들 모 광휘군의 21번째 해가 지고있네요. 어쩌면! 확실한 희망이 있다면 제대로된 열정을 한번 기대해 볼 수 있을까요?
왠지 병신같은 그에게 저 또한 병신이기에 제 인생 모든 것을 베팅했구요, 오늘 얻은, 앞으로 얻게될 모든 것들을 또 그에게 걸어 볼랍니다. 이자리에서 부터라도 부디 베터!!! 댄 에버!!!!

2008.12.03 수 16:34
미소는 번개처럼 짧은 순간에 일어나지만, 그 기억은 영원히 남기도 합니다.

2008.11.23 일 03:16
두 심장을 나란히 포개고 하나가 되길 소망했으면서도
결국 두개의 심장은 각기 뛸 뿐이다.
둘이 하나가 된다면, 그 하나라는 외로움은
그 것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짝이 필요해지기 때문일까? 
여름을 잊을만큼 차가운 공기가 옷틈을 파고드는 것은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실이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의 홀로뛰는 심장은 여전히 외로울 뿐이다.

2008.11.18 화 23:49
 위 아래로 5,000년이나 되는 시간 속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시대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또 가로세로 3만 리나 되는 넓은 땅 위에서 하필이면 함께 태어나 한 나라에서 같이 살아간다는 것도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2008.11.03 월 12:20
생각의 끝에는 졸음이 오고
그리움 끝에는 잊음이 오나니,
그대여, 말을 말어라, 이 후(後)부터,
우리는 옛낯 없는 설움을 모르리.

2008.10.23 목 16:43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