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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written

다음 얘기

by AKHWEE 2014. 3. 13.
공장미술제 관련한 임근준 선생님의 글. 필드에서 직접 활동 중인 분이 쓴 글이다보니 제가 한 달 전에 쓴 글에서 놓쳤었던 많은 부분들을 되짚어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글도 조금 언급이 되어 제 글에 대한 얘기를 짧게 해드리려 합니다. 

저는 이번 일들을 계기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인간인 예술가라는, 즉, 직업적 예술가에게 기대되는 사회적 책무와 그에 따른 권리에 대한, 지극히 보편적인 얘기로 예술가에 대한 의견들이 나눠질 수 있길 기대했었습니다. 제가 크리틱칼에 기고했던 글에선 예술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특별히 대단하지만 약자'라는 이중성에 대한 반성과, 예술가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 스스로가 겪고 있는 부당함에 대해 생각해볼 여유를 갖길 요청했습니다. (본문 링크:http://ewsngod.nayana.kr/zexe/mainissue/4635)

그런 맥락에서 임근준 선생님의 본문에 있는

"홍태림씨의 글에 화답하는 안광휘씨의 기고문, “예술이란 이름의 창조적 노동을 위하여”에는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접조차 받지 못하면서 얻어내는 전시 경력 한 줄”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나온다. 행간 곳곳에서 을의 분노가 느껴진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나로선 공감하기 어렵다. 누가 “최소한의 인간다운 대접조차”하지 않았다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회라면 그냥 거절해버리는 게 옳지 않나?" 

라는 말씀에 대한 해명을 하자면.. 
저 표현은 구체적인 '누구'에게 저런 대접을 받으면서까지 전시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는 제 이야기가 아니라, 전시장 각목보다도 지출 순위가 낮은, '을'의 입장에서 작업을 하고 전시에 '참여'(?)하는 젊은 작가들이 공유하고 있는 '원래 그런' 상황에 대한 비아냥이었습니다. 제 글 솜씨가 부족한 까닭이지만, 제 글의 요지는 "창작한다는 사람이 고작 저런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면서 창작자라는 대접을 원하는 건 무책임한 것이다" 였다는 걸 여기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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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런 얘기가 있는 와중에 있었던 일 하나, 며칠 전에 제 지인에겐 전시 기획 측의 무례함(?)으로부터 자신과 작품을 지키기 위해 전시를 거부해야 했던 경우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홍태림씨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가 그닥 유효하지 못했었나 싶습니다...

둘, 서진석씨가 홍태림씨를 언론중재위에 신고 하셨습니다. 이로써, 제가 기대했던 더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방향이 아닌, 홍태림 vs 서진석 개개인의 대립구도로 얘기가 흘러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었습니다. 

분위기가 이러다보니 임근준 선생님도 '왜 하필 서진석을 까는 것일까'라고 생각하신게 아닐까 싶습니다. 홍태림씨가 다른 언론 매체에 나와서도 공장예술제에 대한 얘기를 계속 반복해야 했던 모습이 절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경험이 지닌 한계가 아니었나 싶기도 합니다. 

더 큰 얘기, 이 다음의 얘기로 발전하기 위한 역량이 많이 부족하단 걸 압니다. 계속 같은 얘기만 반복하다간 안녕하십니까를 비롯한 시간과 무관심과 권력에 굴복해야만 했던 여러 아쉬운 일들과 비슷비슷한 결말을 맞을까 두렵기도 합니다. 더 유쾌하고 신선한 방향으로 이 얘기들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게되길 기원합니다. 

아무쪼록 제게 그랬듯이 이 임근준 선생님의 글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되는 어떤 자극이 되길 바라며 공유합니다...
[문화+서울 2014년 3월호 기고문] "공회전의 한국현대미술계: 윤리 의식의 저하와 을의 분노" _ 임근준 AKA 이정우 http://chungwoo.egloos.com/40113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