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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ds/talked58

<눈오는 지도> 윤동주 순이가 떠난다는 아침에 말 못할 마음으로 함박눈이 내려, 슬픈 것처럼 창 밖에 아득히 깔린 지도 위에 덮인다. 방안을 돌아다보아야 아무도 없다. 벽과 천정이 하얗다. 방안에까지 눈이 내리는 것일까. 정말 너는 잃어버린 역사처럼 홀홀이 가는 것이냐, 떠나기 전에 일러둘 말이 있던 것을 편지로 써서도 네가 가는 곳을 몰라 어느 거리, 어느 마을, 어느 지붕 밑, 너는 내 마음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이냐. 네 쪼고만 발자욱을 눈이 자꾸 내려 덮여 따라갈 수도 없다. 눈이 녹으면 남은 발자국 자리마다 꽃이 피리니 꽃 사이로 발자욱을 찾아나서면 일년 열두 달 하냥 내 마음에는 눈이 내리리라. 2011. 2. 17.
<목숨> 신동집 목숨은 때묻었다. 절반은 흙이 된 빛깔 황폐한 얼굴엔 표정이 없다. 나는 무한히 살고 싶더라. 너랑 살아 보고 싶더라. 살아서 죽음보다 그리운 것이 되고 싶더라. 억만 광년의 현암을 거쳐 나의 목숨 안에 와 닿는 한 개의 별빛. 우리는 아직도 포연의 추억 속에서 없어진 이름들을 부르고 있다. 따뜻이 체온에 젖어든 이름들. 살은 자는 죽은 자를 증언하라 죽은 자는 살은 자를 고발하라 목숨의 조건은 고독하다. 바라보면 멀리도 왔다마는 나의 뒤 저편으로 어쩌면 신명나게 바람은 불고 있다. 어느 하많은 시공이 지나 모양 없이 지워질 숨자리에 나의 백조는 살아서 돌아오라. 2011. 2.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