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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성, 사회성 나는 지난 3월에 출간한 문혜진의 《90년대 한국 미술과 포스트모더니즘》(현실문화, 2015)에 대한 서평을 쓰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는데 계속 발생하는 여러 핑계들로 진행이 몹시 더딘 상태였다..ㅜ 그러다가 여기서 정치적 미술에 대한 글을 연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저 책과 관련하여 떠오른 질문이 있어 먼저 던져 놓으려 한다.. 얼마 전 개콘의 이라는 방송을 두고 시끄러웠다. 은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코너인데, 지난 22일에 방송에서 그 코너가 빠져서 논란이 생겼었다. 몇몇 사람들은 외압이 있는 것 아니냐며 의혹을 재기했지만, 방송 관계자는 아이템이 부실하고 완성도가 떨어져 방송에서 뺀 것이지 외압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사람들은 “개그는 개그일 뿐, 오해하지 말자”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었다. 개그를.. 2015. 6. 29.
작년 말에 쓴 글 쟝 보드리아르는 한 사회의 ‘상부구조’를 결정하는 것은 물질적인 생산 수단이나 상품이 아니라, ‘이미지’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면에서 ‘생산된’ 이미지라는 것은 한 사회의 시각문화의 일부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문화를 규정지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많은 이들이 특정 이미지의 유통에 개입을 하고 그것을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오늘날의 경우엔 매체가 충분히 발달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미지의 생산자가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이미지 생산자의 역할을 해왔던 ‘예술가’들의 위치는 이 사회의 어딘가에 위치할 수 있을까? 우리가 놓인 환경에서 우리가 수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에 의해 생산된 이미지이다. 이미지 생산자.. 2015. 3. 27.
익명성 시스템이라는 것은 익명성을 전제한다. 개개인이 익명을 띤 시스템의 부분으로 환원이 되어야 시스템이 성립하게 된다. 시스템은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하나의 '레이어'이다. 우리가 사회를 구성하고 그것을 유지하게 해주는 하나의 수단이다. 하지만 그 레이어를 유일한 것으로 오해할 때,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난 사람들은 자살을 하거나 히키코모리 같은 것들이 된다. 시스템의 일부가 되지 못한 이들은 소외감을 느낀다.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익명의 시스템은 비대해져 있다. 거기에 문제를 느낀 사람들도 시스템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삶을 2차원적으로 보기 때문에 다른 레이어를 인식하지 못한다. 하지만 다른 레이어, 개개인이 익명의 부분이 아니라 그 스스로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 은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 2015. 3. 24.
내가 할 수 있는 일 작년 12월 27일 희망버스를 탔던 홍태림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누군가의 삶 그 자체가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드러난 스펙터클 앞에서, 이미지의 생산자 역할을 자처했던 예술가라는 자존감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인가?' 예술을 한다고 말하는 순간부터 삶과 예술의 거리감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때때로 예술가라는 자의식에 대해 근본적인 수준에서의 회의감에 부딪치게 만든다. 자신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삶을 걸고서 굴뚝 위에 올라가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며 예술가라 불리는 (혹은 스스로를 예술가라 부르는)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예술을 위해 삶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삶을 위해 예술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매우 어려운 질문에 대해 나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러다 궁극적으로는 .. 2015. 1. 19.